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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07. 2023

아무래도 병원이 아픈 것 같다

애꿎은 엄마가 희생양이 되다

중환자실 앞에서 주치의를 만났다. 오셨냐고, 반갑다는 듯이 내 팔을 잡는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지시한다.

“그 제일 비싼 거 있잖아, 의료보험 되는 거. 어르신께 그거 놔드려. 그리고 이거에 대해서는 나보다 내과 과장님이 지시하시는 게 맞지. 난 그렇게 생각해.”


뭐냐, 이 사람. 첫 번째 면담에서 실망했던, 아니 식겁했던 그 의사 맞나. 진즉 내과 과장에게 협진을 요청했으면 엄마가 중환자실 신세를 지진 않았을 텐데….

여기에선 이야기 나누기 힘드니 진료실로 가잔다. 의사가 장황한 얘기를 시작한다.


내가 간호과장 혼내 줬다. 내 전문은 아니지만 욕창이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다. 피부가 까매진 정도? 심한 경우엔 뼈가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아주 유능한 외과과장한테 특별히 부탁해 놨다. 잘 봐드릴 거다. 아, 내일 만날 수 있게 전화해 놓겠다. (그리곤 보란 듯이 외과로 전화를 연결해 내일 보호자가 갈 테니 잘 부탁한다고 얘기한다. ) … 여기 간호사들 문제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비중이 상당히 높다. 뭘 잘못해도 혼낼 수가 없다. 의사 구하기보다 간호사 구하는 게 어렵다 보니 말을 못 한다. … 수술은 기가 막히게 잘됐다. 여기 엑스레이 사진 한번 보시라. 모양도 얼마나 잘 잡혔나. 뼈가 부러질 때 신경이 늘어져서 시간은 좀 걸린다. 이제 재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곧 시작할 거다. 보호자들 중엔 앉아서 식사하시게만 해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난 최대한 걷게 하려고 한다. … 그리고 내과와 협진을 안 한 게 아니다. 여기 이렇게 기록이 있지 않나. 내가 이 환자에게 얼마나 신경 썼는지 모른다….


이 때다 싶었다. 빨리 퇴원 얘기를 꺼내야 한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렇게 많이 신경 쓴 줄 몰랐다. 어떤 조치를 했는지 도무지 피드백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보호자가 알 수 있나. 그동안 엄마가 뭘 드시지 못해 애만 태웠다. 수술은 잘 됐다고 하는데 엄마의 상태가 특수하기에 걱정이다. 치매 때문에 병원의 환경이 도움이 안 된다. 계속 나빠지실 것 같다. 일단 안정을 찾으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시면 바로 퇴원했으면 한다.

 

다행히 의사가 바라던 얘기였나 보다. 적어도 2개월 이상 입원해야 한다더니 엄마의 상태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말을 바꾼다.

그럴 수 있다.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내과로 전원 요청 하겠다. 사실상 정형외과가 할 일은 다 끝났다.


끝도 없는 변명과 자화자찬이 드디어 끝난 건가? 엄마가 식사를 못하신다고 간호사가 내과 협진 얘기를 꺼냈더니 누워만 계시니까 밥맛이 없는 거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던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신데도 곧 재활에 들어갈 거라고 얘기한다. 대체 누구의 차트를 보고 하는 말일까.

장장 50분은 걸린 것 같다. 엄마의 상태를 생각하면 소리를 질러도 시원치 않은데 퇴원 수락을 받으려고 참는다. 일어서는 내게 의사가 꾸벅 인사한다. 문제가 생긴 다음에야 자세를 낮춘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 듯하다.




재활은 바라지도 않는다. 엄마가 회복되거든 바로 퇴원하기로 했으니 큰 산 하나는 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환자를 둔 보호자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을’인 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다시는 엄마 같은 환자가 생겨선 안 된다. 그런데 병원 홈페이지는 비공개 일대일 게시판뿐이다.

접수처에 가서 병원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담당자를 불러 달라 했다. 관리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란다. 대략적인 얘기를 했더니 간호부장을 부른다. 같이 듣겠단다.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얘기가 제대로 전달될지 의심스러웠지만 누구에게라도 말을 해야 했다.  


이 병원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요양원 협력병원이라고 해서 믿었다. 말할 수 없이 후회스럽다.

제일 큰 문제는 대퇴골 인공관절 수술 후 근 3주간 엄마를 방치했다는 사실이다. 간호사와 간병인이 책임지는 병동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회복은커녕 중환자가 됐다.

병원 곳곳 벽면엔 의사가 보호자에게 해야 할 의무사항이 붙어 있던데 수술과 관련해 사전에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수술 후에도 엄마가 식사를 못하고 상태가 심각해졌는데도 주치의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수술 부위 외,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에 무심했고 협진에 소극적이었다.  

간호사도 엄마의 상태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이동한 다음에야 욕창이 생긴 걸 알았다. 보호자에게 미처 얘기하지 않았을 뿐 계속 드레싱 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하루도 면회를 거른 적이 없는데 간호사와 간병인 모두 욕창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왜 보호자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나. 중간에 끼어 있는 환자들만 피해 보는 구조이다. 병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상태에 대해 숨기거나 거짓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명백히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누군가 또 엄마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 용기를 냈다.


내 얘기가 끝나자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주치의의 전횡에 대해 병원 관계자들이 모를 리 없을 테지만 보호자로부터 들으니 충격인 모양이다.

이제 그들이 답할 차례이다.

간호부장은 매뉴얼 상으로는 환자의 욕창을 놓쳤을 리가 없다 하고, 관리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피해 보상을 원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들 역시 각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리라.

나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 의사와 간호사를 문책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무엇으로 엄마의 상태를 되돌릴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텐데….


어려운 얘기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보고서로 작성해서 ‘위’에 올리겠다는 답변을 듣고 사무실을 나왔다.

중환자실에서 바로 퇴원한다고 해서 행여 엄마를 오래 붙들어놓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사실 이때만 해도 엄마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지 몰랐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욕창이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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