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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10. 2023

요양원으로 돌아온 날

가족 같은 사람들의 환대

엄마가 기력을 회복하신 것 같다는 느낌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 탓인가. 각종 검사 기록은 오히려 회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중환자실에 계시게 할 순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규칙적인 기계음, 가쁜 숨소리, 신음 또는 아우성. 어떤 환자는 면회온 아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석션으로 가래를 빼내는 소리는 환자만큼이나 듣는 사람도 괴롭다. 안정을 취해야 할 엄마가 그 모든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건 고역일 것이다. 당연히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날들이었다.


며칠 전에도 주치의는 투석을 고려해 보라고 했다. 저 상태로 그냥 둘 경우 몸 안에 요독이 쌓여 혼수상태가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엄마에게 투석은 연명치료이므로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가족들과 잘 상의해 보라고 권했다.

멀리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고, 투석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가 하루라도 편안히 지내실 수 있게 퇴원하기로 결정했다. 엄마도 그렇게 하길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퇴원 당일 마지막 주치의 면담. 의사가 다시 내게 묻는다.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했느냐고. 만에 하나 잘못 됐을 경우, 내가 모든 원망과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고. 당연히 함께 결정한 일이라고,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주치의가 조심스레 얘기한다. 솔직히 의사로선 퇴원을 말리고 싶다고, 그리고 엄마의 상태에 대해 다시 한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할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 병원 원장이므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서글퍼진다. 이렇게 엄마 몸이 망가진 다음에 받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다시 슬픔이 밀려온다.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동생과 내가 허둥지둥할 때 요양원 원장은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몇 년 만에 막내 아드님이 오셨는데 엄마가 낙상하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미안해했다. 나중에 들으니 매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상태를 챙겼다 한다. 퇴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할 때도 ”엄마 맘을 헤아려 드리는 게 최우선”일 것 같다고, 오시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간병하겠다고 얘기해 줘서 고마웠다. 사실 요양원에서 엄마를 돌볼 수 없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 가까운 요양병원을 물색해 봤지만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다시 걸으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잠시 접어 두었다. 그저 침상에서라도 제대로 식사하실 수 있게 회복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다시 한번 엄마의 강인함을 믿기로 했다.




“엄마,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조금만 참으셔.”

병실에서 병원 입구까지 이동하는 구급차 베드가 덜컹이는 게 마음이 쓰여 엄마를 토닥인다. 좀 살살 옮겨 주길 바라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은 바삐 움직인다. 엄마가 눈을 감는다.


요양원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 건물은 일반 엘리베이터라 침상 그대로 들어갈 수 없다 한다. 행여나 수술한 다리가 다칠까 걱정된다. 요양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조심조심 침상의 각도를 조절한다. 가까스로 문이 닫힌다.


요양원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엄마 방은 사무실과 가까운 첫 번째 방이다. “하나 둘!” 침상 옆에 모여들어 엄마를 옮긴다. 엄살쟁이 엄마가 “아야!” 하신다. 그런데 병원에서와 달리 얌전한 목소리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소리에 두리번거리신다.

“아이고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대! 어르신, 나 모르겠어요?”

“세상에 얼마나 아프셨을까.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엄마 몸을 찬찬히 살피더니 조심스레 엎드리시게 한다. 먼저 엉덩이 욕창을 치료할 모양이다.

“으앗!” 다들 엄마 상처를 보고 뒤로 물러선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다른 분은 병원에 계셨어도 욕창이 하나도 안 생겼는데 어쩐 일이래.”

 

엄마가 처치를 받는 동안 동생과 난 사무실로 들어가 병원에서 받아온 서류(코로나 검사 결과지, 퇴원 기록서, 진단서)를 건넨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부른다.

“보호자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사진을 좀 찍어 두셔야 할 것 같아요.”

세상에! 엄마 다리에도 욕창이 생겼다. 퇴원하기 직전, 다리 두 군데에 살짝 상처가 있다고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다. 수술한 다리를 고정하기 위해 부목을 댄 자리, 발뒤꿈치와 발등을 넘어 다리까지 욕창이 퍼져 있다. 저 상처를 보고도 그냥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건가. 말도 안 된다.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더니 다시 전화 하겠단다. 1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정형외과 의사가 확인했고 소독했다, 그건 의사가 열어 보라고 해야 볼 수 있는 부위라 그때 처음 확인했고 계속 치료했다’는 항변이었다.


원장과 통화할 수 있게 연결해 달라고 병원 대표번호로 전화했다. 퇴원환자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요양원에 잘 도착했는지 원장이 묻는다. 다급히 다리 욕창 얘기를 꺼낸다. 너무 열받아서 목소리가 떨린다.

저럴 수 없는 일이라고, 거의 피부가 괴사했다고, 직원 전화번호라도 알려주면 어떤 상태인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소리쳤다.

당황스러운지 원장이 알았다고, 가정간호 선생을 보내겠다고 한다.


하, 진짜 이게 병원 맞나. 단순히 다리가 부러져서 왔는데 한 달 새 엄마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 전해질 불균형으로 의식이 혼미해졌고, 신장수치가 치솟아 급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엉덩이와 다리엔 끔찍한 욕창이 생겼다. 치매 환자에게 입원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요양원 원장한테 연락이 왔다. 가정간호 선생한테 전화를 받았고 내일부터 매일 와서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엄마는 산소포화도가 좀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다고, 표정은 좋으시니까 괜찮으실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아까 보았던 요양원 풍경이 떠오른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아 따뜻했다.

엄마도 이 사람 저 사람 둘러보시면서 살짝 미소를 지으셨지.

24시간 함께 한 사람들. 늦잠 자는 할머니를 깨울라치면 엄마가 더 자게 내버려 두라며 말리셨다지, 엄마가 이 방 저 방 불을 끄고 다니면 “저 노인네 또 저런다”고 꼬장꼬장한 어르신이 원장에게 이르셨다지, 엄마가 엄마 방을 찾지 못해 다른 방을 기웃거리면 친절한 어르신이 손을 잡고 데려다주셨다지, 원장이 외출할라치면 엄마가 어딜 가냐고 가지 말라고 손을 붙드셨다지, 엄마가 잠을 못 이루는 날이면 원장도 바닥에 자리를 펴고 같이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지….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원장이 전해준 말들이 마치 드라마 속 장면처럼 서서히 그려진다.  

그래, 이곳이 엄마에겐 집이구나, 이들이 가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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