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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23. 2023

퇴원했지만 여전히 투병 중

마음이 흔들흔들, 원망들

“누나, 형이 와도 뭘 할 수 있겠어? 한국 상황을 잘 모르잖아. 누나가 결정해요. 난 그 병원에서 빨리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의 상태는 좋지 않고, 병원에 계시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 사는 막냇동생의 전화를 받고 퇴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엄마가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온 다음날, 형제 카톡방에 엄마의 다리 욕창 사진을 공유했다.

“미친 의사**…. 저런 상탠데 병원에 돈을 주고 나왔어?” 오빠가 생전 안 하던 욕을 한다. 당연하다. 아프지 않은 다리를 그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런데 내가 바라는, 최대한 빨리 오겠다는 말이 없다. 정말 엄마가 위독하시다고 해야 오려나. 상태가 호전돼서 퇴원하신 게 아니라고, 엄마의 정서 안정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요양원에 계시지만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대체 내 말을 뭘로 들은 걸까. 다시 서운함이 밀려온다.


요양원 원장한테 전화가 왔다. 밤새 엄마의 상태가 어땠는지 자세히 얘기해 준다. 새벽에 다리가 아프시다고 소리를 몇 번 지르셨지만, 잘 주무셨다고 한다. 입안이 많이 헐어서 닦아드렸는데 헛구역질이 났는지 조금 토하셨다고 한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그랬던 터라 간호사에게 당부했는데 제대로 치료가 안 된 모양이다.

내일 집에 내려갈 예정이라 오후에 엄마를 뵈러 가기로 했다.


동생과 함께 요양원에 들어선다. 햇살이 잘 드는 방에 누워 계신 엄마가 보인다. 원장이 주무시는 것 같다고 했는데 우리가 오는 소리에 깨셨나 보다. 하루새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제 가정간호사 3명이 와서 1시간여 욕창 치료를 하고 갔단다. 내일은 피검사도 하고, 링거도 준비하겠다고 했단다. 병원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치료받으면서 정서적으로는 안정되시니 회복도 빨리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희망을 걸어 본다.


요양원 원장이 누가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동생이라고 하신다.

“맞아, 엄마. 동생, 동생들 왔어.”

“엄마, 집에 오고 싶어서 병원에서 소리 질렀던 거야?” 엄마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신다.

“엄마, 큰 고비 넘기셨으니까 이제 10년은 거뜬하실 거야, 그렇지?” 그랬더니 한참 있다 고개를 까딱 하신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지난 어버이날에 못 들려 드린 <어머니의 마음>을 조용히 불러드린다.

“낳을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엄마가 집중해서 듣고 계신 것 같다. 나처럼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시면 좋겠다. “그렇지,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었지. 그게 엄마 마음이야.” 하시며 따라 부르셨던 그때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시면 좋겠다.  

 

병원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입안이 말도 못 하게 헐어서 허물 벗겨지듯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요양원 원장이 엄마, 하며 얼굴을 가까이 대면 그렇게 밝게 웃으실 수가 없다. 아, 고마워라. 엄마가 저렇게 미소 지으시네.

엄마는 우리가 가는 것보다 원장이 눈앞에 안 보이는 게 더 불안하신 모양이다. 우린 요양원 원장에게 밀려난 딸이 됐다.  

오랜만에 엄마의 미소를 보아서일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2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 오빠한테 보이스톡이 왔다.

“당장 가기가 쉽지 않다… 비행기 표도 없고.. 손주들을 당장 어디 맡길 데가 없으니 애들 방학 때나 갈 수 있을 것….”

이럴 때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하고 싶은 얘기를 참으려니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알아서 해요. 엄마 상태는 나도 모르지. 신장이 안 좋기 때문에 요독이 쌓이면 혼수상태가 올 수도 있다잖아요.”


의사가 말하듯 최악의 상황을 무덤덤하게 전했지만 사실 내 속마음은 이랬다.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 오면 무슨 소용이야. 이 고빗길을 함께 해야 가족 아니야? 멀리 있으니 마음도 없는 게지.

다만 엄마의 일생이 서글플 뿐이었어. 어쩌다 치매에 걸리셔서 저렇게 되셨을까. 엄마가 살이 문드러질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누워 계셨다는 게 말이 돼?

나중에 엄마 처지가 되면 우리도 서운해하지 않겠어? 애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얼굴도 비치지 않으면 마음 아프지 않겠어?  


이렇게 글로 울분을 토했을 뿐  난 오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이 서서히 닫혔다. 선뜻 올 수 없는 백만 가지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고삐가 풀린 마음은 제 맘대로 휘청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원망이란 녀석이 불쑥 찾아왔다.

‘당연히’ 동생과 내가 감당해야 할 돌봄이라고 생각했는데 ‘독박’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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