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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Nov 13. 2023

엄마는 호시탐탐 콧줄을 빼고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온다

아, 집이구나. 오랜만에 늦게까지 푹 잤다. 엄마도 잘 주무셨을까.

오빠를 향한 섭섭함은 무소식으로 갚았다. 요양원 원장이 전해준 엄마 이야기는 동생한테만 공유했다. 어머니는 어떠시냐며 페이스톡을 해온 올케한테도 뚱하게, 묻는 말에만 짧게 답했다. 오빠 대신 전화한 올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참 못났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다 괜찮은 듯한 포커페이스는 벗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들 알리라.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오래가지 않아 제풀에 꺾이고 말리라 생각하며 내버려 두기로 한다.


마음만큼이나 입안이 쓰리다. 동생이랑 성게 미역국을 먹은 날 입천정이 데었던가? 피곤해서 혓바늘이 돋은 걸까. 양치질을 할 때마다 고역이다. 이렇게 살짝 아픈 것도 짜증나는데 입안 전체가 헐어버린 엄마는 얼마나 아프실까. 제대로 의사표현을 못 하시는 엄마가 안쓰러워 또 눈물이 난다.




“영양제를 맞으시면 회복이 더 빠를 텐데 혈관을 찾기가 어렵다네요.”

요양원 원장이 안타까워한다. 입원해 계신 동안 이런저런 검사와 수액으로 혹사당한 엄마의 팔은 아직도 퍼렇다. 가정간호사가 굳어버린 혈관을 겨우 찾아 링거 바늘을 꽂았다는데 주사액을 다 맞기도 전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엄마가 어느 틈에 뺐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며칠 전에도 당신 스스로 콧줄을 빼고 천연덕스럽게 코를 파고 계셨다 한다. 원장이 엄마를 살펴보고 잠깐 다른 방을 둘러보고 온 사이였다고 한다. 당황스러웠는데 엄마가 너무 편안한 표정이어서 잘하셨다고 말씀드렸다 한다. 그 얘기를 카톡으로 전해 듣고 엄마 표정이 그려져서 오랜만에 웃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때. 혼자 계신 엄마가 무작정 집을 나갔다가 팔이 골절됐을 때도 그랬다. 많이 다치신 게 아니라 붕대로 고정해 두면 낫는다고 했는데, 엄마는 답답함을 참지 못했다. 집안에 숨겨놓은 가위를 어떻게 그렇게 잘 찾으시던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엄마는 요령껏 가위를 이용해 붕대를 풀고, 요양사는 다시 감아드리고. 엄마의 집요함과 비상함에 온 가족이 두 손 다 들었다. 아픈 팔이 전혀 고정되지 않아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저절로 나았다.  


이참에 콧줄 없이 입으로 드시면 좋겠다고 잔뜩 기대했는데, 아직은 이른가 보다. 엄마는 맛없는 영양보충제에 거부반응을 보이시더니 다 토하셨다 한다. 결국 엄마 코에 다시 콧줄이 끼워졌다. 언제 콧줄을 노릴지 모를 손도 침대에 묶이고 말았다. 면회할 때면 그렇게 묶인 손을 바라보는 게 가슴 아프지만 어쩌랴. 욕창이 치유되려면 무조건 영양 공급이 중요하다니. 당분간 ‘뭣이 중한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게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믿었는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혈액검사 결과 칼륨 수치가 너무 낮아서 위험하다는 진단이었다. 칼륨 주사액을 놓은 뒤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며칠간 입원이 불가피하다고 했단다.

결단코 그 병원에 갈 일은 없다고 굳게 마음먹고 퇴원했는데 다시 입원해야 한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다시 또 엄마 혼자 외롭게 병원에 계시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엄마에게 심각한 상태가 닥쳐도 다른 병원 응급실로 가겠다고 했다. 긴 실랑이 끝에 결국 입원 대신 ‘먹는 칼륨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효과가 떨어진다고 했지만 엄마에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가 지나갔고 엄마는 잘 견뎌내셨다. 위험했던 수치들도 서서히 회복됐다. 투석을 고려해야 한다던 신장 수치는 1.2로 떨어졌고 심각했던 칼륨수치도 2.6까지 올라왔다. 퇴원한 지 2주 만에 일어난 기적이다. 욕창의 상처는 아직 깊지만 기필코 완치되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완치가 어렵다고 얘기했던 의사의 말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한다.


매주 엄마를 면회하러 가는 길.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어제의 엄마보다 오늘의 엄마가 밝다. 엄마의 다크서클이 희미해지고 조금씩 살이 오르고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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