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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17. 2024

아쉬웠던 체스키 크룸로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게 아니었다

고백해야겠다. 브런치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 수익 모델 소식에 두근거렸고 크리에이터 배지에 뿌듯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연재 브런치북을 이용하라는 브런치스토리팀의 공지글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글쓰기의 자유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내 글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엄마의 치매 이야기뿐 아니라, 읽었던 책 이야기도 쓰고, 소소한 일상도 기록하고, 지난 동유럽 여행기도 끄적대고, 잡문 같은 글이 쌓이고 있다. 내 주변 독설가는 “망했다”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어떤 주제의 글만 쓰는 사람으로 한정되고 싶지 않기에 당분간은 이런저런 시도를 할 셈이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동유럽 여행기를 쓰다만 1년 전보다 조금은 덜 막막한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번엔 기필코, 마음먹은 대로 완주해 보려 한다.  


# 버스 안에서

사과부터 해야겠다. 그때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프라하에서 맞은 셋째 날. 아침 일찍 중앙역으로 가서 체스키 크룸로프행 버스를 탔다. 이 티켓은 S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예매해 뒀다. 3시간 넘게 걸린다니 잠을 자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맨 뒷자리에서 우리나라 말이 들린다. 누군가의 연애사인가? 상대가 흥미진진하게 들어선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소음 때문인지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야기가 쉬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조용히 좀 해 달라고. 소음도 소음이려니와 창피했다. 내가 무슨 애국자라고 나라 망신 시킨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다른 나라 친구들이 떠들었어도 똑같이 했을까. 그렇게 반응하는 게 아니었는데,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저 여행에 들떠 있는 청춘들이라고 너그러이 봐줬어야 했는데 무안하게 만들었다. 늦었지만, 미안하다….


# 뭐든 여유 있게 봐야 한다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보헤미아의 보석’으로 불린다. 프라하에 간다면 반드시 가 봐야 하는 곳이다. 난 <꽃보다 할배>에서 ‘할배’들이 감탄하는 모습만 기억하고 갔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첫인상은 여유로움이었다. 강가엔 보트를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탄성이 이어지고, 작은 가게 앞에선 마을 주민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흥겹게 노래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유명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중세 시대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이 있는 곳, 블타바 강이 휘돌아 흘러가는 빼어난 위치에 자리잡은 곳, 어디를 찍어도 화보가 되는 아름다운 마을이니 오죽하랴.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여유가 없으면 그 좋은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건물의 질감을 표현한 벽화는 조잡해 보였고, 근사한 풍광을 담은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하기에 금세 지쳤다. 게다가 거의 모든 식당이 만원이라 헛걸음을 반복했다. 이럴 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린 스보르노스티 광장에서 시간을 때웠다. 너무 오래 걸어서 무언가를 더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지치기 전에 에곤 실레 미술관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양조장을 개조한 미술관은 전시관도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동행 B는 에곤 실레의 파격적인 삶에 매력을 느꼈는지 자그마한 작품집을 샀다.

 

역시 ‘밥심’이다. 무언가를 먹고 나니 달리 보인다. 그 사이 관광객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아쉽지만 우리도 돌아갈 시간이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자꾸만 뒤돌아봤다. 뭔가 아쉬웠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이렇게 떠나는 게 아닌데…. 다른 관광객들도 같은 마음인가 보다. 강 건너편에 서서 다들 성 쪽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나왔는데 매일의 일정이 너무 빡세다. 숨 고르기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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