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브런치스토리 메시지를 받았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그 메시지.
캐리어에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챙겨 왔는데 이러다 한 번도 안 쓰고 가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나.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삐딱한 마음. 지난밤 5분만, 5분만 미루다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고 난 아침. 일단 호텔 침대 옆 책상 의자에 앉아 본다. 글쓰기에 맞춤한 작은 사이즈라 맘에 든다.
LA에 도착해 형제들과 2박 3일 샌디에이고에 다녀왔다. 난 2015년에 온 적이 있으니 9년 만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간여행을 하듯 9년 전의 찰나들을 붙잡아 오버랩해 본다. 그리고 같이 갔던 딸 S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여기 생각나니? 당연히 기억한다고 한다.
당시, 일을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은 일정이었는데 S의 설득에 과감하게 안식월 카드를 썼다. 덕분에 당면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큰 힘을 얻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라호야 코브의 바다사자와 물개들은 여전히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끼익 소리를 냈다. 저 멀리 해변가엔 개구쟁이 바다사자 한 마리가 밀려오는 파도를 타며 아이들과 놀고 있다.
오랜만에 사형제가 만났으니 바닷가를 배경으로 서 보라고 올케가 권한다. 모래언덕에 적당히 키를 맞추니 넷이 고만고만해 보인다. 오빠는 막내보다 열한 살이 많아 하늘 같은 형 느낌이었는데 이제 같이 늙어가는 것 같다. 사형제가 나란히 서서 활짝 웃는다. 자잘한 주름과 처진 눈매를 감춰 주는 선글라스가 있어서 다행이다. 완벽해! 우리가 이렇게 사진을 찍은 게 얼마 만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이민 생활을 하느라, 다들 일하느라 이렇게 완전체로 모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제 챙길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만의 여행이라 더없이 홀가분한 마음이다.
샌디에이고에서 유명하다는 타코 스탠드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9년 전에 왔을 땐 주말이라서 그랬을까.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는다. 작은 소품들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늘어서 있는 Fiesta de Reyes 쇼핑몰에 들어서니 그때의 음악과 풍경들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은 커플이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흥이 난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지. 살랑이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마을축제에 초대된 듯 들떴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모든 스케줄은 LA에 사는 동생이 짜기로 했다. 발보아공원과 센티니얼공원, 그리고 투나하버공원까지. 우린 막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고, 아무도 올리지 않는 인스타용 사진을 찍었다. Spanish Village Art Center의 화려한 바닥타일이 인상적이었고, 릴리 연못이 새삼 아름다웠다.
호텔에 돌아와선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카지노를 기웃댔고, 베팅한 숫자가 나오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했다. 다음날엔 한적한 야외 수영장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냈고,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우린 열흘 후 다시 캐나다 밴쿠버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형제가 함께 하는 두 번째 여행이자,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