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에 눈 뜨다
“가만히 좀 있어. 괜히 왔다 갔다 하다가 부딪히면 어떡하려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이렇게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줄 몰랐다. 저 위 선반에 있는 그릇 꺼내줘야 하는데, 그건 이쪽 팬트리에 있는데…
살림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J에게 알려준다고 주방 쪽을 어슬렁 거리면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감시망을 피해 기어이 왼손으로 뭔가를 하다가 사고를 쳤다. 물건이 떨어졌고, 황급히 잡으려 할 땐 여지없이 아픈 오른손이 먼저 나갔다. 종국엔 아얏! 하는 비명과 참을 수 없는 통증만이 남았다.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 엄마 생각이 났다.
돌아가시기 1년 전, 아버지가 우리집에 잠시 머무르셨던 때가 떠올랐다. 다리 깁스는 풀었지만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엄마와 거실 소파에 머물러 계셔야 했다. 사실 난 아버지가 그렇게 답답해하시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TV 보는 것도 되다, 하시길래 편히 계시면서 왜 저렇게 힘들어 하시나 구시렁거리기나 했다. 갑자기 삼시세끼를 챙겨야 했던 난, 내 몸이 고된 것만 생각했다.
엄마가 요양원에서 낙상해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을 때, 입원해 계시는 동안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을 때도, 난 엄마의 고통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다. 이깟 손목도 이렇게 아픈데, 고관절은 얼마나 아프셨을지, 내가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그 생각에 닿았다. 끔찍한 욕창을 이겨낸 게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엄마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새삼 느꼈다. 여러 모로 무지하고 부족한 딸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6주는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 며칠은 이게 얼마 만의 방학이냐, 이왕이면 편하게 즐기자 생각했다. 그동안 못 본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배 고프다고 빨리 밥 내놓으라고 우스갯소리도 하며 명랑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우울해졌다. 매일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피아노를 칠 수 없고, 경쾌하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하기만 했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아쉬워하니 하루가 더디 갔다.
왼손밖에 쓸 수 없으니 쓸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됐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불편한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할 때 두 손으로 비틀어 갈아 쓰곤 했던 소금통도, 후추통도 내겐 무용지물이었다. 한 손으로 눌러 짜고 다른 손으로 받아야 하는 튜브형 용기도 불편했다.
자연스럽게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포용력 있는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딸을 위해 샀던가. 서랍 어딘가에 있던 왼손잡이용 가위가 아주 유용했다. 깁스한 팔이 쑥 들어가는 소매 넓은 옷, 신축성 있는 소재의 옷이 좋았다. 휴대폰 자판 옆 마이크 기능이 꽤 쓸만했다.
이런 물건들이 필요했다. 불편해진 나를 위해 몇 가지 물건을 사들였다.
깨어 있는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기에 제일 먼저 두툼한 방석을 마련했다.
두 손으로 문질러 거품을 내야 하는 샴푸와 바디워시 등을 싹 치우고 한 손으로 눌러 바로 쓸 수 있는 올인원 버블크림폼으로 바꿨다. 등까지 시원하게 닦을 수 있도록 긴 손잡이가 달린 바디브러시를 샀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손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편리한 용기와 기구들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깁스를 벗은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감사하게도 많이 회복된 듯하다. 아직 겁이 나서 왼손처럼 손목을 꺾진 못하지만 나름 열심히 재활 중이다. 여느 때보다 긴 겨울이었다. 남은 2025년을 더 잘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