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한다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한다

by 데이지

어릴 적 나는 피구 시합을 하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아이였다. 날아오는 공이 무서워 이리저리 피하다 보면 꼭 나 혼자 남았다. 최후는 늘 싱거웠다. 상대의 공 한 방이면 바로 무너진다. 대체 어쩌다 끝까지 남았을까 그 순간마다 후회했지만, 거의 늘 그랬다.


이런 내게 선생님들은 늘 점프볼을 시켰다. 누가 선공할 지 선택하는 그 중요한 일을 나는 그저 키가 크다는 이유로 간택되곤 했다. 그런데 공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내가 잘할 리 없다. 아마도 손을 제대로 뻗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실망한 친구들이 내뱉는 에이, 소리는 늘 따라다니는 효과음이었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심지어 반에서 키가 큰 축에 속했는데도 난 도대체 체력이라는 게 없었다. 체육 점수는 필기시험 덕분에 간신히 하위를 면했고, 입학시험으로 반드시 치러야 하는 체력장도 겨우 통과하는 정도였다. 특히 던지기(스냅을 이용해서 던지라는데 그게 어떻게 내 몸에서 작동되는 지도 모르겠고)와 윗몸일으키기(살짝 반칙을 하지 않는 한 진짜 한 번도 못 한다)는 꽝이었다.


여중을 다녔던 내가 한 친구를 멋있게 본 건 운동을 잘해서였다. 미국에서 전학 온 아이였는데 충격적으로 운동을 잘했다. 당연히 원어민 발음이라 영어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교과서를 읽게 했는데, 난 아이들이 부러워하던 그 영어 발음보다 체육 시간에 훨훨 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곱슬머리였던 그 아이가 완벽한 달리기 자세로 머리칼을 흩날리며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잘하냐니까 미국에선 매일 체육 시간이 있어서 그냥 잘하게 됐다고 했던가. 비결은 ‘매일’이었는데, 난 그냥 미국에서 온 애라 체력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랬던 내가 요즘 가까운 친구들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됐다. 나름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뒤부터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전체 운동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운동한다고 자랑할 만하지도 않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것도 ‘꾸준히’가 붙으면 효과가 커지는 것 같다.


굽은 어깨가 펴지고, 어깨 근육도 조금 생긴 것 같다. 자세가 좋아져선지 작년에 건강검진을 했더니 키가 더 커졌다. 내 나이로서는 놀라운 결과다.

특히 무릎이 안 좋은 이후부턴 대퇴부 근육 운동에 신경을 썼다. 내 수준에 맞게 조금씩.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인바디 검사를 해 보면 근육량이 는 게 보인다. 소소한 결과지만 뿌듯하다.


그런데 손목이 골절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허리 아픈 날이 늘었고, 힘들게 키운 근육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오래 걸린다더니, 깁스 푼 지 석 달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70%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손가락 관절도 아직 뻣뻣하고, 손 전체의 붓기도 남아 있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으므로, 천천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아직 무서워서 턱걸이 같은 건 도전해 보지 않았지만, 어깨 운동은 할 만하다. 잠자기 전 유튜브를 켜고 스트레칭하는 루틴도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쉬었던 피아노도, 손가락 운동을 위해 <HANON>을 열심히 치고 있다.


작년 3월, 그리스 고고학박물관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 함께 간 딸이 한 여자를 가리키며 멋있다고, 엄마도 열심히 운동하란다. 저 몸매? 저건 운동해도 가능하지 않지.

모르긴 해도 나보다 서너 살은 젊을 듯한데, 염색하지 않은 희끗한 머리마저도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나랑은 어깨에서 차이가 났다. 하체가 튼실한 타입의 나와 달리, 그녀는 운동으로 다져진 듯 그냥 당당해 보였다. 말로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슬림 버전이라도 한 번 도전해 보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내 나이 또래는 건강뿐 아니라 거의 생존을 위해 운동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다치면 치명적이다. 몸의 한 부분을 고정한 결과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사람의 몸이라는 게 얼마나 신비롭고도 무력한 지 처음으로 느꼈다.

그래도 평생 운동과 거리를 두었던 내가 이제라도 내 몸을 살피게 돼 다행이다. 운동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내가 기특하다.

날씨가 복병이긴 하지만, 일찍 눈을 뜬 아침 시각 쓸데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릴 게 아니라 산책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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