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 기록(1)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

by 데이지

“많이 다치셨어요? 낙상하셨다고 들었어요.”

요양원 원장이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엄마 면회 때 못 왔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다.

‘낙상’이라니. 노인들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한 단어에 내가 같이 얹히다니. 넘어질 수는 있는데 뼈가 부러지다니.

내 부상 소식에 미국에 있는 동생이 쐐기를 박는다.

“누나, 누나도 이제 육십이야. 조심 좀 해.”


봄기운이 다가오는 이때, 빙판 길은 언제 적 얘기인가 싶다.

7주 전 화요일 아침이었다. 브런치 글을 쓰러 카페로 향했다. 그날따라 조금 피곤한 듯했지만 밀린 글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여느 날처럼 아파트에서 공원으로 통하는 한적한 산책길을 걸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여 있었지만 무심히 걸었다.

미끄덩, 쿵. 순식간이었다. 보호 본능처럼 아이패드가 담긴 에코백을 꼭 쥐었던가. 어떻게 안전하게 넘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주저앉았다.

에이, 조심할걸.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민망한 기분뿐이었다.


어라, 오른쪽 손목이 좀 아픈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일단 카페에 가서 생각해 보자. 병원에 갈지, 말 지. 그런데 웬걸. 손목에 철근을 매단 듯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길 미끄러운데, 추운데 오늘도 카페에 가느냐고 딴지를 거는 J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순 없는데. 근처에 정형외과가 없고, 병원에 가려면 운전을 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그날따라, 아니 하필 그 시각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정기 점검을 하고 있다. 5분만 기다리라는데 참을 수가 없다. 7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다. 힘들다.


내가 집에 다시 돌아가는 건,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거나 휴대용 키보드를 놓고 왔을 때뿐이다. 현관문 소리에 J가 왜 돌아왔느냐고 묻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나의 침묵에 심상치 않음이 담겨 있는 걸 알았을까.

“왜? 넘어졌어?” 딩동댕!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토할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눕고만 싶다.

아들 녀석은 혹시 내가 머리를 다쳤는데 기억에 없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아니야, 내가 그렇게까지 정신없지는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불안해진다.


“손목 골절입니다. 여기 보세요. 이쪽저쪽 둘 다 부러진 것 보이시죠?”

의사가 엑스레이를 가리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하얀 줄이 보인다.

한걱정을 하는 내게 의사는 그래도 수술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말한다. 어지러운 증세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다. 회복까지는 4~6주가 걸린단다. 간호사가 찍찍이로 고정하는 깁스를 채워 준다. 그게 끝!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4주 안에 뼈가 붙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꼬박 6주 동안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몇 차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해 봤지만 내 기대감처럼 쉬이 붙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니,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대체 내 나이가 어때서!




깁스와 함께 한 6주간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이제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나처럼 덜렁대는 사람이 지금까지 무탈한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 지도.

나이 들면 성격이 급해지던가. 이상하게 일을 그만두고도 내 일상은 늘 ‘빨리빨리’였다. 급할 게 없는데도 느릿한 성격의 J를 채근하곤 했다. 몸은 조금씩 느려지는데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도 이제 몸의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조심’과 거리가 안전 불감증에 대해 반성했다.


오른손을 쓰지 못할 때 내 왼손은 너무도 기특하게 역할을 잘해줬다. 나 원래 왼손잡이였던가 생각할 만큼 훌륭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은 물론이고, 서툴지만 글씨도 곧잘 썼다. 하루 조금씩 스페인어 공부(듀어링고는 거의 단어 게임 같지만)를 이어가면서 단어장을 만들었는데 가히 왼손의 재발견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내 일상의 큰 구멍이었다. 무려 7주간의 공백은 브런치 글을 시작하고 처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왼손 투혼, 혹은 독수리 타법으로라도 쓸 순 있겠지만 주저앉은 김에 그냥 쉬기로 했다. 혹시나 쓰고 싶은 마음이 넘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브런치 알림처럼, 쓰지 않으면 글쓰기 근육이 감소할 거라는 걱정이 짙어졌다.


깁스를 풀었지만 굳어 있는 근육들을 풀어내는 과제가 남았다. 오른손은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뻣뻣하기만 하다. 혹시 뼈가 붙지 않았나 걱정될 만큼 붓기도 남아 있다. 그러나 다시 키보드를 치기 위해서라도 일주일간 열심히 손가락 운동을 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무탈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았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간의 생각들을 남기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괜찮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