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수영, 배워야겠다

by 데이지

미국에 사는 시누이 가족이 매년 여름 한국에 온다. 그새 늦둥이 C는 또 얼마나 컸을까. 우리말 실력은 좀 늘었을까. 해마다 꼬맹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올핸 시누이가 묵고 있는 서울 호텔에서 함께 1박 하기로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한때 엄마가 다이빙 선수였으니 C는 얼마나 수영을 잘할까.

아주 오래전, 시누이가 보내준 영상이 떠오른다. 돌도 안 된 아이를 수영장 물에 푹 담갔는데도 물에서 나온 아이가 웃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아, 조기교육이란 게 이런 거구나, 역시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C는 어릴 때부터 물과 친한 아이다.


한편, 딸 S와 난 호텔 수영장은 좋아하지만 수영은 못한다. 어릴 때 수영을 가르쳤는데도 겁이 많아선지 S는 마스터하지 못했다. 난 고등학교, 대학교 때 수영 시험이 필수였던 학교를 다녔는데도 못한다. 마치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까먹는 초치기 공부처럼 수영도 그랬다.


수영 초보 둘이 C에게 달라붙어 얘기한다.

“가르쳐 줘~ 어떻게 하면 숨을 쉴 수 있어?”

“이렇게 하면 돼!”

존댓말이 서툰 C는 틀릴까 봐 우리말 하길 꺼려 했는데 수영장에선 말이 많아졌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며 숨을 쉬는 자세를 보여주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져 버린다. 가르쳐 준다고 해놓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묘기를 선보인다. 유연한 턴 동작부터 수영의 다양한 영법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헤엄친다. “잘한다!”는 추임새에 아이는 수영장 문 닫는 시각까지 물개처럼 놀았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이래서 다들 손주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모르나 보다. C는 마냥 어린아이같이 굴지 않고 약간의 허세가 있는 게 매력이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그런 건 대체 어디에서 배우는 건지….

C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맞으며, 난 이 나이까지 수영 안 배우고 뭐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자각’의 타임. 이렇게 좋은 수영장에서 걸어 다니는 내가 답답했다. C가 가르쳐 준 대로 물에 들어가 숨이라는 걸 쉬어 보기로 했다. 무작정 참는 거 말고 고개를 돌려 숨을 뱉는 동작 말이다. 서너 번은 ‘무대뽀’로 어찌어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거의 몸부림이었나 보다. 다음날 무리했는지 허리가 아팠다.


이제 조금 친해진 것 같은데 작별이라니 아쉽다. C에게 내년에 또 오라고 했더니 모르겠단다. 한국에 너무 자주 왔다나. 이젠 다른 나라에도 가고 싶단다. 수영 선생님으로 모셔야 하는데, 내 마음을 모르는 아이는 자꾸만 튕긴다.




정기 모임을 함께 하는 Y 언니는 수영 예찬론자이다. 수도권에 살다 이 도시에 정착한 것도 50M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단다. Y는 우리와 만날 때마다 수영을 배우라고 잔소리한다. 어디가 아프다고 해도, 지나가는 말처럼 운동을 해야 하나 누군가 중얼거려도 놓칠세라 수영을 권한다.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시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에서 초보수영 교실이 곧 개강한다고 정보를 준다. 초급-중급-상급 강좌가 3개월씩 이어지기 때문에 배우고 싶다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다나. 지금이 딱 좋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이맘 때 배우면 좋긴 하겠다. 여름 시즌이네. 언제 시작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마음은 딱 그랬다.

그런데 C를 만나고 와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그 정보가 생각났다. 홈페이지를 빠르게 검색한다. 아, 아직 접수 전이다.

Y 말대로 3개월 초급 과정이 곧 시작된다. 7월부터 9월까지. 오, 괜찮을 것 같네. 한번 배워볼까.

작년 여름, 샌디에이고 호텔 수영장에서 첨벙거릴 때부터 스물스물 피어오르던 생각들(가까이하기엔 너무 힘든 수영)이 드디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이 아닌가. 더 늦기 전에 수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5년 여름, 앞으로도 영 배우지 못할 거라고 단념했던 그 수영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 모든 건, 내 마음을 흔들어준 일등공신 C와 이등공신 Y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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