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슬럼프인가?
매일 저녁 미리 수영 가방을 싸는 나를 보더니 아들이 놀린다. 꼭 소풍 전날 설레는 꼬맹이 같다고.
그랬다. 매일 설레는 마음. 아들 눈에도 그런 게 보였나 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건 여전히 싫은데 매일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 좋았다.
라커룸에서 쭈뼛대던 초짜 수강생 티도 얼추 벗은 것 같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깜찍한 수영 가방도 장만했다. 그동안 샤워용품을 지퍼백에 대충 넣고 다녔는데 다른 사람들 가방을 보니 실로 다양했다. 물 빠짐이 좋은 것, 수납이 좋은 것, 엄청나게 큰 것부터 미니 파우치까지. 인터넷으로 그깟 가방 하나 고르면서도 이거 살까, 저거 살까 마치 문방구에 처음 들어선 아이처럼 설렜다.
수영과의 허니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제는 내 컨디션이었다. 몇 주간은 처음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이 더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소화도 제대로 안 되는지 뱃속이 불편했다. 저혈압에 소음인인 내게 새벽수영은 정녕 무리인 건가. 한껏 부풀어 오르던 배움의 의지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음마저 상하는 일이 있었다.
수영 수업은 화수목금 주 4일이다. 금요일은 한 주간 수업한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 선생님이 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스탠딩 수업으로 진행한다.
킥판 잡고 발차기를 하다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열심히 차는데 도대체 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지 속상한 찰나였다. 선생님이 내게 손짓을 하더니 뭔가를 던져준다. 땅콩베개처럼 생겼다. 다음 동작 준비물을 나눠주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딱 집어 대여섯 명한테만 전달된 녀석, 풀 부이(Pull Buoy)였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더니 다리 사이에 끼우란다. 엥? 이걸 낀 채 발차기가 가능해? 역시나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풀 부이가 빠질 것 같아서 동작은 더 엉망진창.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풀 부이를 놓치고 말았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
몰라, 안 쓸래! 이거 없이도 할 수 있다고!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서 물에 떠 있는 풀 부이를 집어든다. 어디선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선생님이 야속하다. 풀 부이 같은 보조기구 없이도 할 수 있는데 대체 왜 주신 걸까. 내가 그렇게 못 하나.
못하긴 하지. 선생님은 준비운동 때부터 날 알아보셨을 거야. 제 자리에서 다리 들어 올리기도 힘들어하고, 발차기도 남들보다 오래 못하는 거 보셨을 테니까….
수영 배운 지 한 달도 안 돼서 시무룩해졌다. 딸이랑 전화 통화 하면서 넋두리를 한다.
“엄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거 모범생 증후군이야. 그냥 즐겨. 엄마가 원래 운동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아냐, 잘하고 싶은 게 아냐. 그저 중간 정도, 진도만이라도 제대로 따라가고 싶은데 완전 뒤쳐진 그룹에 속해 있잖아.
처음 맞닥뜨린 슬럼프.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어떻게 하든 초급반 3개월을 견뎌야 한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춥다? 긴 팔 셔츠를 꺼내 입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는다. 최대한 몸이 정상 컨디션이 될 때까지 잘 돌봐 주자.
애꿎게 원망했던 풀 부이와는 곧 작별했다. 선생님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도 접어두었다. 오죽 안타까웠으면 풀 부이를 던져주셨을까. 이해한다.
수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시간. 여전히 잘 못하지만 느릿느릿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