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고 엄마 딸이 되고 싶다
추석이 반갑지 않다. 긴 연휴가 싫다. 이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적응할 만도 한데 여전히 어딘가 갈 데 없는 명절이 낯설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마저 요양원에 가시게 된 지 3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명절 때면 뒤숭숭하다.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그 시절,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향했던 추석날 풍경을 떠올려 본다. 일찍 떠나면 역귀성이니까 막히지 않을 텐데 우린 아침형 인간들이 아닌지라 늘 점심때가 지난 다음에 도착했다. 시댁에 갈 일도 없으니 빨리 출발해도 되련만, 차례 지내고 오느라 그랬다며 어설픈 핑계를 대곤 했다. 한편으론 작은아버지들과 사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어릴 적 응어리진 마음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한바탕 떠들썩하게 손님들이 왔다 갔어도 아버지가 기다리는 건 당연히 우리 가족이다. 언제 오나,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는 바람 쐬신다며 몇 번이고 동네를 서성거리셨을 것이다. 조금 막힌다고, 먼저 식사하시라고 전화를 드려도 늘 그러셨다. 막상 만나면 별말씀도 없으셨지만, 타국에 사는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얹어 우리 가족을 사랑하셨다. 가까이 사는 여동생한텐 미안하지만, 자주 못 보는 큰딸에 대한 애틋함과 각별함이 있지 않았을까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엄마는 추석 명절 준비를 몇 주전부터 시작한다. 급하게 만든 송편엔 소가 부실하다며 떡집에 미리 주문했고, 쇠고기 국거리도 질 좋은 양지머리로 미리 사다 놓으시곤 했다. 손님상에 마침맞게 익은 김치를 내놓으려면 미리 김치도 담가야 했다. 작은 엄마들에게 음식 한 가지씩 가져오라고 얘기하시라 해도 그 말을 안 꺼내셨다. 남이 해온 음식은 눈에 차지도 않거니와 작은 엄마들 음식 솜씨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신의 깔끔한 성격 때문에 몸이 고생하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를 도와드렸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친정에 가서 편하게 엄마가 해준 음식 먹고 설거지나 겨우 하고 오는 게 다였다.
끼니마다 군식구 해 먹이느라 힘드셨을 텐데도 엄마는 하룻밤 자고 떠날 때면 “시원섭섭하다”며 눈물짓곤 했다.
“아니 또 볼 건데 엄마는, 왜?”
점점 외로워지는 엄마의 마음을 그땐 몰랐다.
며칠 전 갑자기 그 장면이 생각났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어쩌다 혼자 있게 된 텅 빈 집(지금은 어떤 집인지조차 생각나지 않는). 안방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외로움이라는 녀석을 만났다.
무심히 엄마 옷을 집어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봇물 터지듯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그런 적 없었던 단 한 번의 장면.
엄마가 없는 집은 쓸쓸했고, ‘어쩔 수 없이’ 돈 벌러 나가야만 했던 현실이 슬펐다. 그래서 밀려온 눈물이었는지 모른다. 한참 동안 엄마 향기가 묻어난 옷에 얼굴을 파묻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어쩔 수 없음’ 앞에서 가슴이 아려온다.
지난주, 요양원 원장이 보내준 사진 속 엄마 모습은 유난히 생경해 보였다. 무표정하거나 살짝 겁먹은 듯한 얼굴. 내겐 낯선 표정이다.
엄마의 사진엔 온도차가 있다. 원장이랑 있을 때 표정이 가장 좋고, 침대에 누워 계실 때가 가장 편안해 보인다. 반면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나 머리카락을 자르고 계실 땐 불안해 보인다. 엄마는 저 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가끔 내 생각을 하실까. 누구보다 강인했던 엄마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깨달음 같은 생각이 스친다. 아, 엄마가 우리를 맞을 땐, 당신의 온 힘을 다해 반기시는 거구나. 그렇게 웃어주시는 거야말로 당신이 표현하고픈 사랑이구나.
그런 마음을 원장에게 전했더니 고맙게도 따끈따끈한 엄마 영상을 보내준다.
“엄마(원장도 엄마에게 그렇게 부른다), ○○이가 명절 지나고 놀러 온대요.”
“그래? 온다니?” 엄마 눈이 동그래진다. 반짝거리는 것 같다.
“근데, ○○이가 누구예요?”
“딸!”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잠깐만이라도 딸이 되고 싶다. 아니 영원히 엄마의 딸로 기억되고 싶다.
엄마, 곧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