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든 생각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어떤 생각이 날까. 연말이어선지 몇 주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긴 병 끝에 맞는 그런 죽음 말고 갑작스레 맞이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주마등처럼 뭔가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좌르륵 펼쳐지는 것으로 그리는데 정말 그럴까.
내 생각엔, 모르긴 해도, 오늘 못한 일, 했어야 하는 일을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애한테 뭔가를 해주기로 했는데, 그 일을 마저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누군가에게 뭔가를 돌려줬어야 했는데 등등의 사소한 생각들 아닐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인생을 헛살았네,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언젠가 탤런트 차인표 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기를 쓴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기를 쓰며 마음을 정리한다고. 오늘 만날 사람,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너무도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가 다시 보였다.
올해는 나이 앞자리가 바뀐다. 이제 만 나이로 우겨도 팔팔한(?) 오십대로 돌아갈 수 없다. 주민등록상 생일이 지나면 국민연금은 이제 그만 넣어도 된다고 할 것이고, 시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관에서도 회원가입을 받아줄 것이다.
초등학교에 일찍 보내고픈 엄마의 열성 때문에 난 태어난 달보다 빠르게, 2월이 지나면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된다.
마흔에도 쉰에도 별다른 기복 없이 변곡점들을 넘어왔는데, 본격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복잡하다. 아직 공식 노인(65세 이상)은 아니지만 서서히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예전엔 노인이 되면 인생의 온갖 맛을 견뎌온 만큼 지혜롭고 너그러워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이 든다고 어떻게 저절로 지혜로워지겠는가. 수십 년 간 형성돼 온 성격이 어떻게 나이 든다고 그저 좋아지겠는가.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더 편협해졌다. 공원 같은 데서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듣는 사람, 헬스장에서 과하게 소리 내는 사람, 참기 힘들다. 며칠 전에도 아파트 탁구장에서, 내기 탁구를 하는 건지 스매싱할 때마다 소리치는 사람 때문에 괴로웠다. 진심 뭐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급해지는 것 같다. 나같이 느긋한 사람이 말이다. 심지어 빨리 안 한다고 옆 사람까지 채근한다.
이런 변화들의 중심에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심지어 나이를 무기로 한마디 하려는 무모함까지 더해진다면 내가 꼴사나워하는 어른이 되는 거다. 이런 나를 경계한다.
새해가 됐다고 특별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그저 하루에 할 일들을 꾸준히 해나감으로써 충만한 하루를 만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새해엔 이걸 고쳐야겠다. 온 가족이 나 때문에 성화다. 제발 천천히 움직여라, 항상 조심 좀 해라.
몸이 다 안 빠져나왔는데 문 닫는 사람, 나다. 순발력은 떨어지는데 대충대충 후딱 하려니 늘 우당탕 쿵탕이다. 몇 주 전에도 팬트리에서 밀폐용기를 꺼내다가 원두 그라인더가 떨어지는 바람에 발가락을 다쳤다. 멍만 들기 망정이지 그 짧은 시간에 또 골절이 되면 어떡하나, 이제 수영은 못하는 건가, 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는 것, 이것 역시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일이리라. 쉽지는 않겠지만 바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