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아버지

뭉근한 사랑

by 데이지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누군가를 돕고 계신 걸까.

몇 주 전, 아버지 꿈을 꾸었다. 배경은 예전에 우리가 살던 2층 양옥집인 것 같다. 아버지 모습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음성만큼은 잠에서 깨고 나서도 생생했다. 아버진 바로 내 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과일 남은 거 있지? 앞집 할머니 좀 갖다 드려라.”

난 “네!” 할 것이지 아침 9시밖에 안 됐다고 이따 간다고 했고 심지어 약간 투덜대기까지 한 것 같다. 아니 왜 동네 할머니까지 챙긴담….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꿈속에 보이는 내 모습이란.


아버진 여전히 하늘에서도 그렇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계신 모양이다. 어쩌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고 도우란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쩌자고 시간은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걸까.

얼마 전, 늘 그렇듯 브런치 글을 쓰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수다를 떨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동생 목소리가 이상했다.

“언니, 나 아빠 보고 싶어서 추모공원에 왔어.”

아직도 동생은 아버지 생각에 울먹인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생신이더라며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냥 왔다 했다.

나도 갈까, 아니 괜찮아, 그러다가 우리 집 쪽으로 오라고 했다. 왠지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늘 일하느라 바쁜 동생이 이렇게 불쑥 어딘가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사무칠 만큼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울 아버지 동태찌개 좋아하셨지….

동태찌개를 앞에 두고 우린 아버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옆에 계시다면 틀림없이 살이 많은 몸통은 딸들에게 덜어주고 당신은 동태 대가리를 가져가셨을 것이다. 아빤 그런 분이셨다.


하지만 가끔 의아할 때도 있다. 자랄 때 아버지보다는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우리 형제들은 왜 이렇게 아버지를 좋아했던 걸까.

잔소리가 많으셨던 엄마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걸까. 엄마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겠다. 엄마 넋두리처럼 아빤 평생 하숙생 같은 인생을 살았다. 집은 그저 다음날 ‘일하기 위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장소일 뿐이었다. 집안의 대소사 모든 결정은 오로지 엄마 몫이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법 없이 사실 분, 자상한 분이라고 칭송하지만 아버진 밖으로만 돌던 분이었다. 평생 가정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하지만 엄마의 치매 앞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3년여의 시간 동안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엄마를 챙기고 보살폈다.

“아빠, 엄마도 혼자 하실 수 있는 건 해야 돼. 아니, 왜 엄마 밥을 방으로 가져다주신대?”

엄마가 그릇을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는지, 아버지는 아예 안방에 둥그런 밥상을 들이고 엄마 식사를 챙겼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압권이었다.

“평생 네 아버지 챙겨줬는데 내가 이런 수발도 못 받는다니?”

엄마의 저 당당함, 물러터진 아버지와 다른 무엇. 치매도 꾀병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도 멀쩡한 응수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아버지를 좋아한 건 어쩌면 약간의 동정표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마!”라고 버럭 하는 경우는 어쩌다 가끔이었고, 아빤 엄마의 논리 정연한 항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 엄마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큰 형이니 동생들에게 한마디 하라고 해도 절대 싫은 소리 못했고, 일 끝나면 일찍 좀 들어오시라 해도 아빠의 관심은 늘 밖에 있었다. 알코올만 들어가면 얼굴이 벌게지니 술을 좀 줄이시라 해도 사람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자연스레 엄마의 잔소리에 무력한 아버지가 안쓰럽다고 느꼈을 법하다.


아버지의 사랑은 뭉근하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동생이랑 난 미담을 캐듯 아빠와의 일화를 떠올린다. 입덧하던 막내딸에게 지겹도록 건네주셨다던 귤 봉지, 차로 모셔 드린다 해도 버스 타고 가면 된다고 종종걸음 치시던 뒷모습, 평생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는 걸 원치 않으셨기에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을 소진시키셨던 마지막 모습까지….


아버지가 거기 계신 듯, 가끔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외로우셨을 마지막 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걸, 그때의 후회를 담아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한다. “아빠, 엄마 만나고 왔어요, 막내아들이 글쎄 할아버지가 됐대요, 3월엔 형제들이 다 모일 것 같아요….” 생전 그 모습처럼 그저 묵묵히 들어주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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