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단상
친척 결혼식이란 게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원해졌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것. 예식은 토요일 저녁 6시. 요즘엔 굳이 낮에 안 한다지만 주말 저녁에 혼잡한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남편 혼자 다녀오면 좋겠는데 몇 년 전부터 밤 운전이 어려워져 내가 기사 노릇을 해야 했다.
우리가 모두 만난 게 언제였을까. 10년 전? 아이들을 본 지는 아마도 20년쯤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어릴 때 얼굴을 기억해 내기란 쉽지 않다.
시어머니 오라버니, 그러니까 남편의 큰 외삼촌 댁엔 매년 서너 차례 방문했다. 남편이 삼대독자라 집안 모임은 주로 외가 식구들과 함께 했고, 제사 때와 명절에 만났다. 연배가 비슷비슷한 남편의 외사촌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약간의 상처도 받았다. 다들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성장 발육이 얼마나 빠른지 서로 얼마나 신경 쓰는지. 고개를 언제 가누고, 새하얀 이가 언제 나고, 제 발로 뒤뚱뒤뚱 걷는 건 언제인지. 안타깝게도 우리 애들은 모두 신체 발육이 늦었다. 남의 집 아이들은 돌잔치 때 걷다 못해 뛰기까지 하던데 우리 애들은 아예 걸을 생각을 안 했다. 두 녀석 다 겁이 많아서였는지, 그래 봐야 넘어진다고 벌써부터 머리를 굴린 건지.
특히 큰애랑 몇 달 차이 안 나는 D는 또래보다 발육이 빨라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러다 늘 뒤처지기만 했던 우리 애가 드디어 앞설 기회가 생겼다. 말을 너무 잘하는 거다. 다음 모임에서의 반응이 기대됐다. 그런데 우리 애를 본 D 엄마 왈, 역시 여자애라 빠르네. 뭐야, 저렇게 간단한 거였어? 나는 단 한 번도 남자애라 발육이 빠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우리 애의 언어 능력이 그냥 여자애라서라니. 그때의 어이없음과, 뭐라고 대꾸하지 못한 내가 두고두고 억울했다. 한데 사실 D와의 체력 경쟁은 비교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D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지금 해외에 있단다. 세상에 190cm의 키에 몸무게가 120kg라니 그 넘사벽 피지컬은 우리 집안에 없는 유전인자였던 것이다.
남편 외사촌의 여혼. 결혼식은 30분이 체 걸리지 않았다. 주례가 없고 양가 부모 중 신부 측 아버지가 축사를 한다. 신랑이 유난히 어려운 고음의 사랑 노래를 어렵사리 끝내고, 신랑 친구들이 축가를 부른다. 온전히 신랑 신부를 위한 예식으로 간소해진 것 같은데 그렇담 굳이 이렇게 큰 규모의 결혼식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애들이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인지 형식적인 예식이 심드렁하기만 하다.
시어머니는 위로 오빠 둘, 아래로 여동생 둘, 오 형제의 딱 중간이다. 그런데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시이모님만 남았다. 아직도 내 머릿속엔 어른들의 정정한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안타깝게도 다들 투병 중에 돌아가셨다. 시외숙모님은 손녀딸의 결혼이라 요양원에서 외출하셨다는데, 늙어버린 우리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유난히 깔끔하신 분이었는데 치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달 전에 요양원으로 모셨다 한다. 그저 옅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 숙모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픔이 번진다. 엄마 생각이 난다.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을 천천히 살펴보니 마치 인생의 압축판을 보는 듯하다. 더없이 축하해 줘야 자리에서 인생무상을 느꼈다면 미안한 얘기일까. 나도 이들처럼 이렇게 힘차게 출발했는데 어느새 그때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남편의 사촌들도 하나둘 퇴직하거나 정년을 앞두고 있다. 희끗해진 머리카락이 낯설다. 모두들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반갑게 서로 안아 주었지만 세월은 그야말로 속절없이 흘렀구나 싶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피로연장에서 친척들과 마주 앉았다. 예전 같으면 시외가댁의 대장 큰 외삼촌의 아우라에 다들 총출동했을 텐데 부부 동반으로 온 집은 우리뿐이다. 다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을 테지만, 이렇게 멀어지는구나 싶다. 허리가 아픈데도 와야 할 것 같아 오셨다는 시이모님이 한소리 하신다.
- 너희들, 하나밖에 없는 고모(이모)한테 가끔 전화라도 해라. 나는 지금도 너희들을 얼마나 생각하는데 너무들 하지 않니?
- 네…. (하나같이 건성이다.)
어른들의 외사랑, 우리도 이렇게 늙어갈 것이다, 가끔 서운해하며, 옛 추억을 곱씹으며….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