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홀로 여행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by 데이지

지금은 대만 타이난 작은 카페. 가족 여행 중이다.

지난 8개월간 아침 일찍 수영 강습을 다닌 덕분에 나는 기적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됐다. 여행지에서도 그 루틴이 유지되는 게 뿌듯하다. 오늘도 저녁형 인간들이 깰 세라 호텔을 빠져나왔다. 날씨가 좋으면 아침 수영을 하려 했는데 야외수영장이라 아쉽다.


어제도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렸지만 일찍 문을 여는 가게는 별로 없었다. 카페는 더더욱 눈에 띄지 않았다. 호젓한 아침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검색해 보니 8시에 문을 여는 카페가 있다. 어제도 이 앞을 지나갔는데 무심히 지나친 모양이다. 고풍스러운 건물 앞에 작은 입간판이 있을 뿐 내부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깔끔하다. 높은 천장고에 모던한 디자인. 한쪽엔 강당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고 젊은 친구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이럴 때 잠시 세월을 거슬러 20대의 나를 떠올린다. 어느 봄날이었을까. 오래된 본관 건물의 삐그덕거리는 마룻바닥을 밟으며 창가 책상에 자리를 잡는다. 푸르른 연녹색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에 눈이 부시다. 아마도 그 순간이 감사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진득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당시의 시국은 공부할 때가 아니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로 이탈. 다시 돌아간 대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영어 공부를 안 한 건 조금 후회된다. 특히 해외 여행할 때 무척 아쉽다.


“엄마도 혼자서 여행 한번 해봐”

20대 초반부터 혼자서 씩씩하게 유럽을 누볐던 딸 S가 권한다. 그러고 보니 육십 평생 혼자서 어딘가를 떠난 적이 없다. 어차피 호텔을 예약해야 하니 둘이 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지만 핑계다. 그렇다면 S 말대로 가성비 좋은 게스트하우스라는 선택지도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항공권과 숙소 예약, 여행 동선 짜기, 맛집 검색.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가능한데 혼자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안전? 그것도 처음엔 치안이 괜찮은 도시부터 도전하면 될 것이다. 외로움? 그것이야말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묘미일 지도. 아마도 오롯이 혼자였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글이 더 잘 써질 수도 있겠다. 이건 좀 기대되는 바이다. 겁이 좀 많긴 하지만 나이가 주는 묵직함이 그런 마음을 좀 눌러주겠지.


2020년, 코로나가 막 시작됐던 때 14년간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그때가 아니면 2년 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난 이미 지쳐 있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수시로 통화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일들이었지만 내게 떨어진 일이었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책 제목처럼 나는 이미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20년 남짓 정을 붙인 그 도시를 떠났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작은 도시로 이사했다. 모두들 우려했지만 내가 선택한 고립을 통해 비로소 평안함을 느꼈다. 아마도 혼자 여행하는 기분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S가 말하곤 한다. 엄마는 여행지에서 더 활기차 보인다고. 맞다. 평소보다 더 많이 걷고, 잘 먹고, 잘 자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솟아난다. 대만 여행은 11개월 만의 해외여행이다. 일정은 짧지만 천천히 기록해 보자.

(- 3월 6일, 타이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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