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에서

소도시 여행의 맛

by 데이지

대만 여행은 세 번째이다. 두 번 다 타이베이가 중심이었고 여행객 모두가 가는 예류와 지우펀을 다녀왔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남쪽으로, 대만의 고도 타이난과, 항구도시 가오슝에 가기로 했다.


첫날 가오슝 공항에 내려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바로 타이난 호텔로 이동했다. 야외 수영장이 있다는 말에 나는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챙겼다.

누가 보면 엄청난 수영인인 줄 알겠지만, 현실은 그저 생존수영이 가능한 정도. 해질 무렵이라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풍덩~

딸 S가 동영상을 찍어 보여준다. 수영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본 건 처음인지라 실망 그 자체. 수영 선생님이 왜 내게 늘 뭐라 뭐라 하는지 알겠다. 제대로 된 폼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타이난은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최고 기온만 확인하고 한여름 옷들만 잔뜩 챙겼는데 일교차가 컸다. 생각 같아선 아침마다 수영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꽤 쌀쌀했다. 아쉬운 마음은 운 좋게 거의 전용으로 쓴 사우나에서 달랬다.


타이난에선 공자묘, 적감루, 안평고성, 안평수옥 등을 둘러보았다. 박물관파인 남편의 계획대로 국립대만역사박물관에도 갔다. 대중교통 연결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걸어갈 수 없는 곳은 우버택시를 이용해 큰 불편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보다 사진을 덜 찍는다. 전경 사진은 S가 잘 찍으므로 공유하면 될 테고, 나는 어슬렁거리며 식물이나 거리 풍경, 귀여운 이미지들을 담는다. 갤러리 폴더를 살펴보니 이번엔 유난히 문 사진이 많다. 초록 식물과 대비되는 진주홍 벽은 얼마나 예쁘던지. 문들을 통해 난 무엇을 더 보고 싶었던 걸까. 삶의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만 그 많은 문이 닫혀 있다고 투덜댔지만, 돌아보니 적절한 순간 열린 문들이 나를 인도했고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타이난 거리를 걸으며 이만하기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육십 평생을 지나 오니 이제야 ‘관조’의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유여행은 천천히 그 도시에 스며드는 느낌이 있어 좋다. 처음엔 오로지 목적지만을 생각하는지라 오르락 내리락 가게 앞 보도를 걷는 게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낡은 벽면에 그려진 소소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만인들의 여유가 느껴진달까. 타이베이와 또 다른 소도시 여행이 주는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 어디가 나무이고, 어디가 건물일까

Tree House인 안평수옥에 도착한 건 관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사전정보 없이 들어간 그곳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난해한 사진이 되고 만다. 과거 소금창고였던 건물은 반얀나무의 일종인 벵골보리수가 점거해 버렸다. 그 놀라운 생명력에 소름이 돋는다. 계단을 올라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보지만 그 공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감탄사를 연발하다 뒷마당으로 나왔더니 더없이 고요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카페는 일찍 문을 닫았고, 강변에 놓인 테이블에 오래 머물기도 어려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낭랑한 새소리만이 공간을 메운다.


그래, 결국엔 자연이 모든 걸 이길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태주의자나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경이로운 자연 앞에, 그리고 그 공간을 온전히 보존해 온 대만인들의 태도에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타이난에선 우리가 관광객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가 비슷해서일까. 입을 열지 않은 이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게 좋았다. 점점 더 소도시 여행이 좋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