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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05. 2023

병원도 치매 환자를 모른다

CT 촬영하느라 온종일 진을 빼다

엄마를 만난 날. 평소와 다르게 엄마의 발걸음이 이상하다. 저렇게 느리게 걷지 않으셨는데, 어디가 불편하신가?

요양원 원장은,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다 우리가 면회 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한다.

“며칠 전에 숟가락을 든 어르신 오른손이 잘 올라가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제 오른쪽 다리까지 끄는 듯 걸으시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신경정신과 검진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난 좀 더 지켜볼까 싶은데 동생이 빨리 검사를 받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한다. 일단 요양원에서 엄마를 모시고 협력병원에 가기로 했다.

 

엄마는 오늘따라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난 이제 아무것도 못해. 내가 나갈 수가 없어.”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집에 가서 밥이라도 해줄 텐데, 이런 마음이 담긴 말이리라. 평소엔 이런 말씀 하시지 않는데 왜 그러실까. 엄마가 쓸쓸해 보인다.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성격이 더 온화해지셨다. 칼 같은 성격이라 당신 맘에 안 드는 것 못 봐주고 말씀도 많으셨는데 그 모습이 다 사라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엄마의 원래 성품인가 보다. 엄마는 원래 온순하신 분인데 워낙 사는 게 팍팍해서 엄마 성격이 변한 거지. 동생들한테 만날 휘둘리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늘 싫은 소리 들어가며 교통정리 하셨던 거지. 어떻게 하든 사남매를 키워내야 했기에 당신이라도 결단력 있게 처신하셨던 거지.  


엄마가 우리를 쳐다보며 웃는다.

“동생들이 이렇게 자주 오니까 좋다.”

 엄마 손을 잡고 엄마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고생을 하시고도 이렇게 곱게 늙으시다니, 치매에 걸리시고도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웃으시다니…. 눈물 버튼이 눌러질 듯해 숨 고르기를 한다. 짧은 면회의 여운은 늘 길다.




신경정신과 진단 결과 엄마는 ‘뇌경색 의심’ 소견을 받았다. 지금은 괜찮으시다지만 다리를 끄는 걸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바로 정밀 검사 받기를 권해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검사만 받으면 되니까 몇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다.

  

“언니, 치매 전문 종합병원이 있어야 되겠더라.”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던 동생이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아니, 치매라고 얘기했는데 ‘환자분이 협조해 주시면’이라니 이게 말이 돼? 언니도 내가 전화했을 때 레지던트가 하는 말 들었지? 의사들도 모르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고생했다.”


보호자로 따라간 동생은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하루 종일 엄마를 지켜야 했다.

그동안 면회할 때만 엄마를 만났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둔감해졌는지도 모른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치매 환자인데 말이다. 내가 교대해줬어야 했는데, 이럴 땐 멀리 사는 게 안타깝다.


수액을 맞을 때부터 엄마는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한다. 할아버지가 링거 맞는 거 알면 혼난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왜 이런 걸 꽂아 놨느냐고 주사 바늘을 빼려 하고, 손가락에 살짝 끼워둔 센서의 깜박이는 불빛이 뭐냐고 자꾸 묻고, 지나가는 남자를 보고 “저~기 동생이 있다”며 일어나길 반복했다.


긴 기다림 끝에 들어간 CT실에선 자꾸 움직여서 찍을 수 없다고 1차 퇴장당했다. 분명히 치매 환자라고 얘기했건만 병원은 엄마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기다렸다가 수면제 처방을 받고 나서야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일단 CT 상으로는 이상 소견이 없었다. 그럼 MRI까지 찍어 봐야 한다고 해서 지금 가능하냐니까 “환자분이 협조해 주시면”이라는 말이 나왔던 거다. 아니, CT도 겨우 찍은 걸 알면서 엄마에게 어떤 협조를 바란 걸까. 치매 환자의 특수 상황을 고려해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결국 엄마의 증상이 무엇 때문인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

어둑해진 저녁, 속상한 마음으로 요양원 건물 앞에 엄마를 내려드린다. 약속대로 원장이 1층 현관에 나와 있다. 원장에게 편하게 안겨 들어가시는 엄마 모습이 보인다. 동생이 안도한다.  

보지 않았어도 동생의 헛헛한 심정과 지친 엄마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고생했다. 가서 쉬어라.”

차 안에서 엄마가 이렇게 멀쩡히 말씀하셨다고 동생이 전한다. 하루 종일 동동거린 걸 어렴풋이 기억하시는 걸까? 자식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 깔끔한 양반.

부디 엄마가 괜찮으시길, 아프시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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