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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14. 2023

벚꽃이 흩날리던 날, 낙상..

가장 두려운 일을 당하다

일찍 핀 벚꽃이 질까 싶어 근교로 꽃구경을 나간 날이었다.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 시각에 무슨 일일까?

“보호자님, 어르신이 엉덩방아를 찧으셨는데 아프다고 하시네요. 119를 불렀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가까이 사는 동생에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전한다.


봄바람이 왜 이리 사납게 불어댈까. 활짝 핀 벚꽃이 후드득 떨어진다.

공원 산책로 목 좋은 정자에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다. 요양원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온 모양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이동한다. 활짝 핀 벚나무 앞이 포토 스폿인가 보다. “여기 보세요!” 하는 소리에 어르신들이 하나둘 멈춰 선다. 이번 주 활동 사진을 보면 보호자들이 깜짝 놀라겠다며 더 활짝 웃어 보시라고 채근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엄마는 올해 벚꽃을 보셨을까. 꽃구경 나온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다. 부럽다.


유독 가물었던 날씨 때문인지, 엄마의 낙상 소식 때문인지, 올해 벚꽃은 생기가 없어 보인다. 엑스레이 결과가 괜찮아야 할텐데 불길한 소식이 전해질까 싶어 내 마음도 스산해진다. 가장 슬픈 꽃구경이었다.


엄마는 결국 대퇴골 골절 진단을 받았다. 동생이 보내온 엑스레이 사진엔 뼈와 뼈 사이, 너무도 선명한 까만 공백이 보였다. 어떻게 넘어지셨길래 저 부위가 부러질 수 있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다음날, 엄마를 만나러 올라갔다. 일반병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저녁 시각에, 단 한 명만 할 수 있다. 코로나 방역 지침도 많이 완화됐는데 이렇게 제한하는 건 ‘행정편의주의’ 아니냐고, 최소한 교대로라도 짧게 만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동생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6인실 출입문 쪽에 엄마 침대가 보인다. 엄마는 낯선 환경인 데다 아는 얼굴이 없어선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어디 가느냐고 자꾸 물으시길래 “엄마, 밥 먹고 올게요.”라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섰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병원이란 데는 정말 갈 곳이 못 된다. 법적 최소 면적만 확보한 듯한 다인실 병실은 더더욱 열악하다. 치매를 앓기 전 엄마라면 당장 다른 데로 옮겨 달라고 하실 것만 같다.  


다음날 면회시각. 엄마는 어제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계셨다. 요양원 원장이 물건 전해드리러 잠깐 들렀다는데 그래서 좀 안정되신 걸까.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반갑게 맞아 주신다. 앉을 의자도 없는 좁은 병실에 자꾸 앉으라고, 여기 같이 눕자고 이불을 들치신다.  

“엄마, 내가 누군데?”

“동생이지.” 엄마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신다.

“그렇지, 동생.” 언니가 된 엄마를 가만히 안아드린다.


“어디에 살지?” 내게 던지는 엄마의 질문은 한결같다. 가까이 살지 않는다는 건 아시는 모양이다.

“지방에 살잖아. 엄마도 우리집에 오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자꾸만 물어보시는 통에 “엄마, 조용히 해야 돼. 옆에 계신 분 주무시잖아.”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도 목소리를 낮춘다. “그래…. 근데 어디에 살지?” 10초도 안 돼 엄마가 다시 묻는다.

“안 가르쳐 줘!” 일부러 뾰로통한 표정으로 답한다. 농인 줄 아는 엄마가 웃는다.


“엄마, 어쩌다 엉덩방아를 찧으신 거야?”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못 들은 척한다.

몇 주전, 엄마가 가끔 멍하니 딴생각을 하실 때가 있다고 들었는데, 다치신 날도 창밖을 보시면서 침대 쪽으로 뒷걸음치시다가 그러셨단다.

집에 계실 때도 소파에 앉으신다는 게 거리 가늠을 못해 털썩 엉덩방아를 찧으실 때가 있었다. 짐작컨대 그러시지 않았을까 싶다.

 

짧은 면회가 끝나간다. “엄마, 뽀뽀!”라고 말하고 엄마 얼굴 가까이 뺨을 들이댄다.

내일모레글피~쯤 환갑인 딸이 엄마 앞에서 애교를 부린다. 엄마가 멋쩍어하시면서 입술을 살짝 대주신다.

“아이고, 이래서 딸이 있어야 돼.” 간병인이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나도 한껏 명랑한 표정을 짓고 내일 또 오겠다며 병실을 나선다.  

괜찮겠다. 엄마 컨디션을 보니 수술도 잘 이겨내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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