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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May 16. 2023

현실 속 ‘낭만닥터 김사부’ 따윈 없다

최악의 의사를 만나다

나는 욱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수술에 대해 보호자 동의를 받으려면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의사는 엉뚱한 얘기만 하더니 사인하고 가라 한다.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면담이었다.  


엄마 수술 전날이었다. 보호자 면담이 필요하다기에 당연히 엄마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삼 남매가 갔다.

남동생이 미국에서 왔다고 해서 그랬을까. 의사가 갑자기 우리나라 의료수가 문제에 대해 길게 얘기한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듣고 싶은 얘기도 아니다. 그래서 엄마 수술에 대해 물었다. 인공관절은 어디를 대체하는 건지, 핀 고정술은 수술 시간이 45분이라고 들었는데 이 수술은 얼마나 더 걸리는지. 보호자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대뜸 의사가 “그럼  45분짜리로 해드려요?”라고 말한다.

 

내 입을 막고 싶었던 건가? 갑자기 봉변을 당한 기분이었다. 대략적인 수술 시간을 물었는데 뭐가 잘못 됐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동생이 쿡 찌른다.  

‘아니 뭘 그만해. 말해 준 것도 없잖아.’ 동생에게 눈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더니 의사가 치매 환자에 대해 한참 얘기한다.

“지금 어르신은 제가 보니까 중증 치매 환자예요. 그래서 핀 고정술 대신 인공관절 수술을 하려는 거구요. 치매 환자의 지능은 다섯 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픈데도 침대에서 일어서지 않나, 어떤 사람은 침대에서 막 뛰기도 해요.”


치매 환자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엄마는 많은 기억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다섯 살 아이 수준의 인지 능력은 아니다. 불쾌하다.

“수술은 제가 알아서 할 거구요, 밖에 나가서 아드님이 사인하고 가시면 됩니다.”

“전 미국 시민권자인데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아들이면 돼요. 아들이 해야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어떻게 보호자를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수술을 좌지우지하는 의사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예, 예 하고 있으라는 건가.

사인하는 데도 한참 기다렸다. 간호사가 내미는 종이를 들여다보니, 엄마의 골절 부위, 수술명, 부작용 등이 적혀 있다. 엄마는 이름도 어려운 ‘좌대퇴골 전자간 분쇄골절’이었다. 우리가 나간 다음에 의사가 끄적인 내용인가 보다. 자세히 읽어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둔다.




다음날 수술실 앞. 엄마가 일반병실에서 내려오시길 기다린다.

늦어진다 싶었는데 보호자를 찾는다. 엄마가 아래 틀니를 못 빼겠다고 하신단다. 병원에선 틀니를 억지로 뺄 수 없다나.  

내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엄마에게 빼 보시라고 했더니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으신다.

혹시나 해서 요양원 원장에게 전화한다. 평소에 엄마가 스스로 빼신 것 맞는지. 그렇단다.

엄마가 불안하셔서 모르겠다고 그러시나? 그렇담 다르게 얘기해야 한다.

“엄마, 이거 엄마가 매일 빼시던 거야. 할 수 있어.”

간병인에게 손 보호대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혹시나 링거 주사 바늘을 뺄까 봐 병원에선 장갑 같은 걸 끼게 한다.) 엄마가 걱정스럽게 입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러더니 철컥 빼내신다. 다행히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잘하셨어, 엄마.” 엄마에게 박수를 쳐드린다. 엄마가 멋쩍게 웃는다.  


어제 면담 이후, 의사와의 소통은 남동생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병실로 의사가 들어온다. 엄마 상태를 묻더니 간호사에게 빨리 진행하자고 지시한다. 보호자라곤 나밖에 없으니 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최대한 밝게 인사한다. 오늘 만난 의사는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가? 어느새 의사의 심기를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고 한다. 엄마는 꼬박 일주일간 중환자실에 계셨다. 고령이라 관찰이 필요하다 했다. 일반병실로 옮긴 뒤 의사와 다시 면담했다. 남동생이 출국하는 날이었다.


“여기 엑스레이 사진을 보세요. 수술한 부위는 여기구요, 어르신이 허리 디스크도 있고 반대쪽 다리도 상태가 별로 안 좋으세요.”

통상 수술 후 3주 차가 되면 재활에 들어가는데 엄마는 골절되면서 신경도 늘어졌고 뼈 상태도 좋지 않아 지켜봐야 한단다.  

웬일로 오늘은 의사가 자세히 설명한다. 이게 정상인데, 그새 의사에게 길들여진 듯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뒤로 엄마가 영 식사를 못하셔서 걱정이라는 얘기에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영양제 맞으시면 된다고. 과연 괜찮을까.


처음 그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동생에게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르신들은 수술 기다리다 가시기도 하고, 수술 중에 가시기도 하고, 수술받은 다음에 가시기도 한다.”던 그 말.

원래 의사들은 최악의 상황을 얘기한다고, 동생은 마음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전해 듣기만 해도 오싹했다. 모든 원인이 고령 환자에게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대체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의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동생이 말한다.

“언니, 우리가 그동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봐.”   


그날 저녁 면회 시간. 엄마를 만나러 갔다. 집에 내려갔다 온 사이, 엄마의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지셨다. 날 보더니 엄마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졸리다고 눈을 감으신다.

많이 힘드신가? 엄마가 주무신 다음에 간다고 해도 엄마는 자꾸만 눈을 뜨며 확인하신다. 어서 가라고. 5분도 채 머물지 않았는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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