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Jun 20. 2023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니

다시 만난 친구들

‘라떼’ 스토리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땐 최루탄이 난무했다. 매캐한 그 가스는 데모를 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미친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이고, 어떻게 된 게 전쟁 때 맡았던 가스보다 더 독해.”

그때 내게 6.25 전쟁이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 까마득한 과거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불과(!) 40년 전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 꼭 그만큼 흘렀다. 내가 대학 시절 얘기를 한다면 지금 세대도 그렇게 아득하게 느끼지 않을까.


김연수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다 나의 20대를 떠올렸다.

시대는 암울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고 학점을 잘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다. 시험 때만 되면 돌변하듯 공부에 올인하는 친구들을 그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미팅도 시들하고, 그닥 맘에 드는 동아리도 없었다. 선배들이랑 스터디도 하고 가끔 토플 강좌도 들었지만 꾸준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날들이었다.


세 번째 맞는 학교 축제 때였다. 교회 친구가 단과대 풍물패라 공연을 한다고 했다. 교회 선후배들이 응원차 오기로 했다. 공연장까지는 교문에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기에 내가 안내해 주기로 했다. 학교 행사가 크게 열렸던 해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공연장이라고 해야 작은 체육관 같은 곳이었다. 사람은 많고 때아닌 더위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에어컨 시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다들 빽빽하게 자리를 채워 앉았다. 공연은 훌륭했고  친구는 돋보였다. 정작 친구가 맡은 사물이 장구였는지 꽹과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멋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난 뭐 하고 있었던 걸까.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교지 편집위원을 뽑는다는 포스터를 만났다. 어쩌면 그전부터 붙어 있었을 텐데 이거다 싶었다. 도전하고 싶었다. 취업 준비가 코앞인데, 3학년 때 무언가 딴짓을 한다는 건 사실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대학 생활을 마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 학보사나 교지편집부가 3학년을 신입으로 뽑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지원 가능하다니 기회다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을 바꿨다. 그동안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했던 세상이 다가왔다. 한 순간의 ‘현타’ 혹은 ‘자각’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지금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살 줄 알았다면 당시 내 선택은 좀 달랐을까. 세상이 이렇게 더디 변하거나 제자리걸음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덜 아팠을까.




대학교 친구들이 연락온 건 5년 전, 우리과 톡방이 만들어진 다음이었을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KTX를 타고 내가 사는 곳까지 오겠다고 했다. 이렇게 함께 만난 건 얼마 만일까.


우린 주로 1학년 때 몰려다녔다. 서로 미팅을 주선하고 공강 시간에 모여 함께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3학년 때 이후론 잘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분주했고, 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래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뭉쳤다. 졸업식 때 함께 사진을 찍었고,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하루 전날 지방으로 함께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다들 이런저런 사정들이 생겼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세상에, 우리가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다니 이게 말이 되니?”

“넌 진짜 하나도 안 늙었다.”

“네 신랑, 그때 미팅 때 만났던 사람 맞아?”

흘러간 세월이 무색하게 만나자마자 얘기를 쏟아내기 바쁘다.   


안부 인사가 끝나가자 한 친구가 내게 말한다.

“네 소식 간간이 들었어. 난 네가 변하지 않은 모습이 보기 좋더라. 그래서 만나고 싶었어.”

내가 변하지 않았을 리 지만, 오랜 친구가 건네준 한 마디는 따뜻했다.

각자 굴곡 많은 인생 역정을 담담히 얘기하고 들어주면서 우리는 좀 더 가까워졌다. 일 년에 몇 번이라도 만나자 했고, 건강할 때 여행도 함께 가자 했다. 어렵게 다시 만났으니 느슨하게라도 연결돼 있자 했다.


몇 년 후 우린 회갑 기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스무 살, 서로의 풋풋한 시절을 기억해 주는 친구들과 무한수다를 떨 그날이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주인이 잠적했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