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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26. 2023

아파 봐야 고마움을 아느니

갑자기 ‘무릎’ 이야기

“난 항상 생각해요. 내가 평균적으로 살 수 있는 세월을 생각해서 내 몸을 잘 관리해야 겠다고. 앞으로 20여 년 남았으니 자주 기름칠 해줘야죠.”


무릎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서일까. 갑자기 20년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속해 있는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조합원 연수를 간 때였다. 우리를 위해 통역을 맡아 주신 분이었는데, 3박4일 일정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생협 운동뿐 아니라 고국에 대한 사랑이 넘친 분으로 기억한다.


“이곳 후쿠오카 물이 우리나라로 흘러간다는 생각에 그린코프 조합원들과 ‘물 살리기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집 주변 하천을 깨끗하게 하는 운동이 자신에겐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었다며, 그 물이 흘러 고국까지 가닿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체 연수 일정은 빡빡했다. 일본의 대중교통 요금이 비싸다더니 견학지로 이동할 때마다 몇 정류장씩 걷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우린 자주 지쳤는데 선생님은 거뜬해 보였다. 게다가 쉬는 시간 짬짬이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곤 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이신다고 했더니 기계 못지않게 인간의 몸도 유한하니 잘 써야 한단다.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난 흘려들었다. 그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동안 잊고 있었다.


매주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가느라 평소보다 운전을 오래 한 게 무리였을까. 얼마 전부터 오른쪽 무릎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달리기 운동은 못해도 걷는 덴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 초록불 신호등이 깜박여도 잰걸음을 못하겠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건너면 늘 시간이 남곤 했는데 세상에, 이제 내가 천천히 걷는 속도와 얼추 맞다. 몇 년 전에 본 미드 <그레이스 앤 프랭키>가 생각났다. 70대인 주인공들이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지나치게 짧다며 늘려달라는 청원을 하는 에피소드.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감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가. 무릎에 염증이 생겨서 고생한다는 친구 소식이 남 얘기 같지 않다.




난 유독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유치원 때 앨범을 보면 또래보다 훨씬 키가 큰 데도 체력은 부실했던 모양이다. 타이즈에 치마를 입고 다니던 그 시절, 내 타이즈엔 늘 바늘로 꿰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새 타이즈를 신겨 줘도 얼마 가지 못했다. 허구한 날 넘어졌으니. 타이즈뿐 아니라 무릎도 성할 날이 없었다. 지금처럼 보도블록이 깔려 있지 않은 때라 길바닥 자잘한 돌멩이에 스친 찰과상들이 상처로 남았다. 성격이 급해서 막 뛰어다닌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엄마가 “조심하지, 또 넘어졌냐!”라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돌아보니 살면서 딱 한 번 다리를 크게 다쳤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였을까. 길을 걷다 마주 오던 자전거와 부딪혔다. 그럴 때 있지 않나. 피한다고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한 순간 판단을 잘못해 충돌하게 되는. 딱 그 상황이었다. 결국 자전거에 치여 발 뒤꿈치뼈가 골절됐다. 무릎까지 길게 깁스를 해야 했다.


자전거를 탄 상대는 열대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된 이발소 수습생이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엄마 아빠가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알고 보니 저~기 이발소에서 일하는 아이더라고요. 자기가 그동안 모은 돈이라고 저금통을 들고 와서 치료비로 써달라는데 받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잘했어.”


사실 내 과실도 있을 터였다. 아니 왜 내가 가는 방향으로 자꾸만 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랬던 것 같았으니. 깁스 한 다리는 아팠지만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마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 아빠가 멋지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아픈 다리는 잘 나았고, 나는 쑥쑥 컸다. 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아선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내 키는 평균을 훌쩍 넘겼다. 고등학생 때부턴 늘 뒷번호였다. 체육은 못 했지만 체력장을 통과할 정도의 체력은 됐다. 한창 통통했던 20대 전후와 임신했을 때를 제외하곤 체중 변화도 크지 않았다. 특별히 몸 관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릎 관절이 잘 버텨준 건 아마도 그 덕이었을 것이다.


아파 봐야 소중한 걸 깨닫게 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건강한 무릎 덕분에 지금까지 불편함 없이 거뜬하게 잘 살아왔다. 가끔 떠난 해외여행지에서도 다리 아플까 걱정하지 않고 잘 걸어 다녔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무릎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다행히 엑스레이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니 이제라도 잘 살펴야겠다.

뜬금없지만 고맙다, 나의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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