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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24. 2023

집주인이 잠적했다(3)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가 그동안 좋은 사람들만 만났나 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거지?”

우리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경찰이 입회해야 CCTV를 보여줄 수 있다 했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전세보증금을 받았고 무사히 이사까지 했는데, 현관 비밀번호를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벌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은 길고도 길었다.

전세기간이 만료됐다고 바로 보증금 반환 신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HUG 측은 계약 만료일로부터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경우‘사고’라고 본다. 애초에 HUG 보증기간도 계약일 한 달 뒤부터 계약만료일 한 달 뒤까지였다.


당장 접수할 없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  ‘임차권등기명령’이란 걸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HUG가 요구하는 필수서류다. 임차인이 신청하면 임대인 집 주소로 관련 내용을 송달한다. 예전엔 주소불명으로 되돌아오거나 집주인이 회피해도 몇 차례 송달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절차가 개선됐다 한다. 다행히 접수 후 2주 만에 처리됐다.  


그다음엔 HUG 서류를 준비하는 일이다. 다가구주택이 아닌 경우 총 17가지의 서류가 필요하다.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이메일로 간인 예시 사진까지 자세한 내용을 보내준다. 온라인으로 신청해도 원본이 필요한 서류는 HUG에 등기로 보내야 한다. 담당자가 말하길, 모든 서류를 등기로 보내면 처리하기 편하다기에 그렇게 했다. 전화 상담했던 4월 중순만 해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서류를 보낸 지 보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도 답변이 없다. HUG에 전화했더니 그새 시스템이 바뀌었나 보다. 직원과 바로 연결되지 않고 상담사가 받는다. 진행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누군지도 확인이 안 된단다. 진즉 처리되고도 남을 기간인데, 불안하다. 등기로 보낸 서류가 통째로 사라진 건 아닐까, 어딘가에서 누락된 건 아닐까. 확인 전화를 주겠다고 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결국 목소리 큰 B가 전화해 보기로 한다. 통화 연결은 어려웠고 담당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바뀌었다. 상담원 담당자1 → 책없는 기다림  상담원  담당자2  담당자3  담당자4를 거쳐 45일 만에 서류가 통과됐다는 회신을 받았다.


마음이 급했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 했고, 그 많던 전세 매물도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최근 입주한 아파트 단지 매물 몇 개를 둘러보고 바로 계약했다. 이사일은 2주 후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모든 짐이 빠진 방과 거실, 주방 곳곳을 카메라에 담는다. HUG 담당자에게 관리비 및 도시가스 정산 영수증과 함께 내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낸다. 그리고 몇 분 후, 딩동 알림음과 함께 전세보증금이 계좌로 입금됐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그러나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임차인은 이사 가기 전, 몇 월 며칠에 이사할 예정이고 현관 비밀번호는 ****으로 변경한다고 임대인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 HUG가 보내준 양식대로 임대인에게 카톡으로 전달했다. 어차피 임대인은 중국에 있다 하고 연락 두절 상태이니 형식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 직전에 확인해 보니 카톡이 ‘읽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새 집으로 이사한 다음날, HUG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임대인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알려준 비밀번호가 틀리다고 “제대로 명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비밀번호를 재차 확인하고 잠갔는데 틀리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 대리인은 임대인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연락이 안 된 지 꽤 오래됐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3자 대면을 요구했으나 차일피일 시간만 흘렀다. 임대인 측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와 만난 HUG 담당자는 말을 아꼈다.

결국 우리 돈으로 디지털 도어록을 열었다. 3개월여 동안 전세보증금 때문에 마음 고생하고, 임대차등기명령 하느라 돈 들이고, 집주인에게 받아야 할 장기수선충당금도 돌려받지 못했는데 부당했다. 명도 운운하며 임대인 측이 물어야 할 지연이자(전세보증금의 5%라고 한다)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를 다시 걸고넘어진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또다시 임대인 측이 억지를 부릴까 봐 현관 비밀번호 설정은 우리 모르게 HUG 담당자가 하도록 했다. 비밀번호는 HUG에 문의하라고 임대인에게 다시 카톡을 보다.


이제 진짜 끝난 건가. 2년간 살았던 아파트 단지를 애잔하게 돌아본다. 그리고 HUG 직원에게 당부한다.

다시는 우리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HUG의 빈틈을 노리는 세력들이 있으니 다른 지역에도 이 사례를 공유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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