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으로 태어난 순간, 사랑은 설명이 필요하다
사랑은 어렵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사랑이 쉽다 말하는 이가 혹여 있다면 그가 말하는 사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사랑이란 것은 진지하게 생각할수록 더 어렵게만 느껴지는 속성이 있다. 인류는 사랑이란 것이 없으면 애초에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아, 섹스가 사랑의 행위라는 가정 안에서 이뤄지고, 생명이 태어난다는 관점에 비춰볼 때). 그런데도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고, 확실한 정답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사랑의 대체품이 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을 대신할 것들이 발에 치인다. 돈, 명예, 직장, 능력, 인맥, 출신 등. 당연하게도 외모까지. 일반적으로 이 사회에는 '사랑받을 만한' 호감형의 사람에 대한 정의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로 사랑에 빠지며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이것들을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사랑도 경쟁이 되는 이 시대에 모든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나는 사랑이 어렵다. 나는, 나만의 이유들로 사랑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비단 이것은 연애의 시장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인간인 나는, 사랑이 상당 부분 다른 것들로 오염되기 쉽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너무도 쉽게 나만의 색을 잃어버렸고,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이 세상이 원하는 사랑에 대한 상(常)을 흉내 낼 수조차 없다. 이미 난 나만의 존엄과 매력을 드러낼 기회와 자원을 불평등하게 부여받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이처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사랑할 만한 구석이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마치 온 세상의 저주가 퍼부어진 양, '나'라는 자는 그렇게 해석된다. 불길한 인간,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 그래서 동정받아 마땅한 그런 사람. 절대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어떤 것. 이런 장애에 대해 인간 마음 깊숙이 깔린 인식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것보다 가까이해야 하는, 아니 어쩌면 거의 완벽한 일치를 추구하는 사랑이라는 가치에서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어떤 이는 이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장애인을 사랑한다고, 누구보다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말들까지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관념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당사자로서의 고립감’이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장애인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오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대개 현실보다는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사랑이라는 무대에 설 수 있는 장애인은 많지 않다. 그것이 가족이든, 우정이든, 연인이든, 관계의 형태와 상관없이 말이다.
구태여 공인화된 수치를 가져오지는 않겠다. 그냥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온전한 가정의 형태에서 자라나는 장애아동은 여전히 희망적인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 그렇게 교육받은 장애인이 사회에 필요한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 누구나 그렇듯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그 보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여정에 편승하는 것이 장애인, 다른 말로는 소수자인 사람에게는 평등한 기회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사랑이 어려워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 비참한 현실에 내가 빠짐없이 놓여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장애인'치고' 교육을 받은 편이며, 장애인'치고' 노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치고' 몇 번의 사랑도 경험해 봤다. 그리고 내 모든 억울함을 능히 풀어주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신 순간, 나는 이미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넉넉히 새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사랑에 한계를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 그 한계는 때로 나를 고립시키고, 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조차도 조심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을 모른 채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아주 천천히, 어느 순간 아주 작은 결로, 사랑은 내게도 와 있었고, 나는 그 사랑을 알아보는 눈을 조금씩 길러왔다. 손에 쥐지 못하더라도,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서 나를 따뜻하게 적셔주는 감정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랑은 여전히 어렵지만, 나는 그 어려움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 삶의 속도와 방식대로, 나만의 사랑을 천천히 배워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