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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Nov 30. 2020

우리는 실수합니다.

거의 항상

일상 가운데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경험합니다.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실수를 당하기도 하지요.      


계단을 오르다가 발끝이 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다 약속시간에 늦기도 하며, 서류를 빠뜨려 중요한 거래를 놓치기도 합니다. 

 지하철에서 균형을 못 잡은 사람이 넘어지면서 나를 밀치기도 하고, 햄버거 가게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쟁반을 놓치며 내게 햄버거와 콜라를 쏟기도 하고, 나에 대해 오해를 품고 있던 친구로부터 심한 말을 듣기도 합니다.      


여기서 일단 이 글에서 말하는 실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실수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온 행위’라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행동한 것들은 이 글에서 제가 말하는 실수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잘못을 범해놓고 “미안, 실수였어.”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수는 유쾌한 감정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실수와 관련된 기억들을 잠시 떠올려 보면, 늘 언제나 불쾌하고, 불편하며, 부끄럽고, 짜증나기도하며 심지어 화가 일기까지 하지요. 그런 감정들만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수와 연관된 아픈 기억으로 인해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두려운 감정 혹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실수로 인해 좋은 결과가 왔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반갑게 받아들이지 못할뿐더러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식 중에 또는 무의식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수라는 것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회

최근의 트렌드를 보면 개인의 감정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일상의 모든 활동들, 음식을 먹고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여행을 하고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감정을 중심으로 구축되도록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양상이 ‘우리가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든 활동에서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우리 행위의 동기와 행위를 이끌어가는 의지에는 감정이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내가 즐겁고, 기쁘고, 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상의 반경이 그런 좋은 감정들을 느끼는 일들로 이뤄지게 되겠지요. 


저는 결코 좋은 감정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감정이 행위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을 모든 행위를 관찰하는 ‘감시자’의 위치로 격상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실수와 연관 지어 다뤄봅시다. 실수는 유쾌한 감정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따라서 좋은 감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은 실수가 두려운 나머지 실수를 야기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게 됩니다. 또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 자신에게 행해진 ‘타인의 실수’ 또한 용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사고를 관장하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 상대방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같이 생각을 좀 해봅시다. 아무리 실수가 발생할 수 없는 완벽하게 안전한 곳에 홀로 거하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실수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독방에 홀로 누워 있더라도 손가락을 잘못 움직여 손에 쥐가 날 수도 있고,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사래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을 만나면 변수는 훨씬 더 복잡해지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내 삶은 실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실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좌불안석이 되지 않을까요?      


실수는 실수일 뿐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실수를 나쁘게 보지 말고 좋게 보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실수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일상의 행위에도 곰팡이 번지듯 영향을 끼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불편한 감정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눅이 든 채로 쭈그려 있지 말고 움직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움직이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감정이 아닌 의지

행동의 동기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 된 시야로 바라본 행위의 가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쉽고 편하고 내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그 일을 선택하기보다는(물론, 취미나 여가는 이와 같은 가치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것들은 대인관계, 일상에서의 일들,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들임을 기억합시다.), 그 일의 본질적인 가치, 즉 옳고 그름을 따져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일들은 어렵습니다.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의 습관은 이미 예로 ‘스마트폰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게 아닌, ‘어떤 스마트폰이 얼마나 더 좋고 나를 즐겁고 편하게 해줄까?’에 대한 실용적인 질문을 하는데 익숙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곤하고 귀찮은 일들은 싫어하게 됐지요. 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는 할 수 있어도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어쩌면 뿌리부터 통째로 뒤흔들 수도 있지요.)


우리 감정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통장에 돈이 두둑하고, 음식을 배불리 먹고, 곁에 친구들까지 있으면 작은 실수 따위야 아무렇지 않게 여겨집니다. 그럴 때는 용기가 샘솟는듯하고 세상일은 다 형통한 듯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돈은 무한하지 않고, 배는 언젠가 고파지며, 친구들 또한 평생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내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될 때,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우리의 감정은 우울해지며, 작은 실수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럴 때라면, 그때까지도 행위를 관장하는 것이 감정이라면, 우리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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