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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l 15. 2022

불행이란 무엇일까 1.

우리는 불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살면서 고통스럽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기억이 있던 순간부터 나는 피해자였다.


윽박지름 당했고, 맞았다.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 됐고, 말하고 표현해서도 안 됐다.

겉으로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때론 소리 지르고 있었고

때론 누군가를 꼬집고 폭력을 휘둘렀으며

때론 내가 그냥 죽어버려서 내 주변 사람들이 날 괴롭힌 것에 대한 죄책을 느꼈으면 하고 생각했다.     

피해의식에 깊게 잠겨 있는 사람, 그것이 나였다.


사람들은 날 보고 수군거렸고, 나는 그것이 싫어 사람들을 피했으며,

반대로 수군거리게 만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착한 아이가 되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려 했다.

바른 행실만을 추구했다.


음악의 재능을 살려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고, 인기를 얻었고,

스포츠의 재능을 살려 경쟁에서 이기려 했다.     

이기지 못하면 분개했고, 나를 저주했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폭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과 있는 것은 감옥 안에 있는 것처럼 갑갑하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내게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함을 넘어선, 내가 나답지 못한 일로 다가왔다.


서른이 넘어서 나는 내 삶에 대해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


내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다.
불행한 일의 연속이다.


위의 느낌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느낌이었다.


모든 일이 불행으로 다가왔다.


미래에 대한 부담, 자유롭지 못한 현실, 숨 막히게 구는 가족들, 일궈놓은 것 하나 없는 나 자신, 걸핏하면 끓어오르는 염증, 비참했던 과거, 그 과거가 양산해낸 내 실수들, 여기저기 불편하고 아파지기 시작하는 몸, 지긋지긋한 불면증, 우울증, 공황, 10년 넘게 다니는 정신과..


불행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더는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살아갈 의지도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랬다. 내 머릿속에서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삶을 그만둬야 할 이유들뿐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랬다.

삶은 불행이었다.


답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죽고 싶어 하면서도 죽기 싫었다. (다른 글에서 밝힌 것처럼 자살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뭔가 아까웠다. 이 불행한 삶을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냥 가기에는 아쉬운 삶이었다.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그렇게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불행했기 때문에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고통을 불행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불행했던 것’이란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 이상적인 삶이란 평온과 안락함으로만 채워진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원채 정신사납고, 긴장 가득하고,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나는 평온함과 안락함을 행복한 삶의 척도로 여겼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래서 내게 가장 좋은 일은 ‘억제자가 없는 상황’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얼마나 방학을 사모했던가.(지금도 연차 쓰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긴 한다.)

성인이 되고 워라밸이 보장되는 직장을 얼마나 찾아다녔던가.

그리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의 연락을 다 끊어냈으며,

가족마저 등지고 홀로 멀리 가서 살지 않았던가.


어느새 나는 오랜 시간 혼자 살고 있었고, 사람들을 피해왔으며, 

종국에는 사람 하나 만나지 않고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만을 보며 살게 되었다.


중간중간 어플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소모임도 나가보았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관계에서 달콤함만을 추구했고(나도 그랬으면서도), 씁쓸함을 피하기 위해, 어색함을, 불편함을 회피하기 위해 서로 솔직하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포장지로 덧입힌 행동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게 싫었다. 

의미 없이 겉만 핥는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피했다.




결국 진짜, 진짜 혼자가 되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먹고, 책읽고, 글쓰고, 산책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살았다.

‘소로’처럼 홀로 있어보려고 홀로 있던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다보니 홀로 있게 된 것이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가 너무 두려웠던 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점점 사로잡히게 되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1년 넘게 살았을 때,

큰 일도 아닌 일로 죽고 싶을 정도로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윗집의 소음에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을 하려 하니 두려움이 엄습하고, 소음이 거세질수록 어떤 날은 우울이 뒤덮어 죽어버리고 싶고, 어떤 날은 분노가 치솟아 이웃에게 해코지를 하고 싶었다.

집 장판에 곰팡이가 핀 것을 보며 당장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고, 금전적 피해를 보더라도 이사를 가버릴까 고민했다.

내 심경을 불편하게 만든 아버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끊어버리기도 했으며,

카페 직원의 눈도 못 마주치고, 정형외과 간호사들이 나에 대해 수군거리지나 않을까 신경 썼다.

  

불편함을, 불행을 피해 도망친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불행에 노출되어 있었다.


거친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ㅈ밥 같은 인간이 되어 있던 것이다.


내 필요한 것도 요구하지 못하고, 내 표현도 하지 못하고,

어리버리 하고 어버버 거리고

상냥하기만 하고, 친절하게 굴기만 하는

오직 달콤함으로만 무장되어 있는 ㅈ밥 같은 인간.


불행을 두려워하면서도 불행하기를 그 무엇보다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어떤 상황이든 치명적으로 여기면서 불행의 늪에 쉽게 빠져버리는 인간


날 불행하게 만든 것은 상황이 아니었다.


고통과 불편함과 염증을 마주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야만 한다는 의식,

어디서부터 들어온 것인지 모르는 그 생각이 날 불행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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