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삶'을 '평온과 안락함으로 채워진 삶'이라 상정하면
삶은 불행해진다
삶에 즐거운 일만 가득해야 하고,
혹은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고
불편한 일이 생겨나지 않고,
혹은 불편한 일들이 생겨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고
'감정이 즐겁지 못하고, 압박 받고, 부담 있고, 불편한 관계와 일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사람은 그 누구보다 불행에 노출되게 된다.
행복을 추구할수록, 불행을 경멸할수록
결국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행이란 무엇일까.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함일까, 억제당하고 억압당하는 것일까,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자기 소유물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수월하지 못한 것일까
위의 것들은 고통이 맞다. 부담이 맞고, 불편이 맞다.
그렇다면 고통과 부담과 불편은 불행과 직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고통과 부담과 불편을 행복이라고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고통을 행복이라 말하는 것은 자기연민이나 처량함에 침잠된 사고에서나 나올법한 말이다.
고통을 행복이라 말한다고해서 고통이 행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일 뿐, 그것을 가지고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다.
C.S루이스는 말했다.
부담이나 불편 또한 마찬가지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부담이나 불편을 겪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던가?
근래 들어 많은 현대인들이 몸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근육을 만드는 일은 고통과 부담과 불편을 겪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알지 못하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게 되는 일도,
몸의 어느 곳에 이상이 생겨 그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도,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일에 적응하는 것도,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누군가와 얕은 관계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도,
고통과 부담과 불편을 지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학문과 일을 배우고, 몸의 이상에 적응하고,
회사에서 낯선 일과 낯선 사람과 부대끼고,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가지는 일에는
고통과 부담과 불편만 존재하는가?
결코,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염증과 불화와 다툼과 슬픔과, 때론 단절과 절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삶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다린다면, 견딘다면, 내 옹졸한 생각을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민다면, 용서한다면, 사과한다면, 한 걸음 더 내딛는다면
삶은 대단한 기쁨과 행복을 선물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