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틀루이스 Feb 09. 2020

내 여행은 왜 실패할까?

여행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일상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들 또한 잘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강릉 바다를 보고와도, 기차를 실컷 타고 태백산맥을 한 바퀴 돌아도, 하늘을 날아 제주를 다녀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대로였다. 일하기 싫어했고, 더 쉬고 싶어 했으며, 의지박약은 여전했다. 아, 더 큰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며 매번 그 여행에 실망했다는 거다. 근래 들어 만족했던 여행은 없었다.


이게 참 딜레마인 것이, 여행에서 누리는 것이 없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계속 여행을 갈망한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도대체 여행을 갈망하는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나가는데 말이다. 이 얼마나 소모적인 짓거리인가? 차라리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거기에 그 많은(꽤 되는) 돈과 시간을 썼으면 얻는 거라도 좀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잘못된 여행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여행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선 내게 여행의 이미지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좋은 기분과 건강까지 안겨다 주는,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낯선 사람과의 낭만적인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는, 패키지도 이런 패키지가 없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문제가 해소되고, 문제를 회피하려 했던 나의 게으른 습관은 바뀌어 내가 생산적인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뭔가 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여행을 오해하고 있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여행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의 사람들은 세상 걱정 없고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 보였다. 어쩜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지 모르겠다. 쨌든, 나는 여행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며 여행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를 지녀온 것 같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여행을 가기만 하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 먹고, 그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며, 그 행복이 내 일상을 가득 채워버릴 줄로 착각했던 거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큰 기대 때문에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이 대폭 줄어버렸다는 것을.



종로에서 맞은 뺨은 종로에서

나의 잘못된 여행관을 바로잡기 위해 나의 여행욕구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내가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니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가지 있었다. ‘회피’ 와 ‘일탈’이 그것이다. 회피하고 싶고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여행욕구를 자극했던 거다. 그렇다면 나는 왜 회피하고 싶고, 일탈하고 싶어 했을까?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다. 얼마나 취약하냐면 회사생활 3개월 만에 심장 주변에 염증이 났을 정도로 취약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내 사전에 호기심이나 도전 같은 단어는 없었다. 눈치 봄, 신경 씀, 주눅 들음, 울분을 삼킴 등의 단어만 가득했다. 이런 내게 사회생활이란 사자우리에 던져진 기니피그의 생존기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겠는가. 그 당시 퇴근 후 일과는 여행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 됐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또 억압된 일상을 사는 내게 ‘일탈’의 충동이 거세게 몰아쳤다. 뭔가 분출하고 싶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던 거다. 브런치북 <<사랑 같은 중독>>에서 밝혔던 것처럼 나는 낯선 사람과 연락을 하거나 그들과 성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을 강박적으로 원했고, 그것을 완벽하게(지인들에게 들키지 않고, 동네 사람이 아닌 타지의 낯선 이를 만날 수 있는)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외지로 여행을 가는 것이라 생각했던 거다.  


이런 내게 여행은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깨진 잔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것은 깨진 잔에 모히또 붓기가 아니라 깨진 잔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든 심리상담을 받든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을 우선시해야 했다. 그 다음에는 사회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을 접고 어떻게 하면 회사생활을 잘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색하며, 문제를 마주하고 나를 성장시켜 나갔어야 했다. 꽁무니 빼고 도망치며 여행이 다 해결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고 말이다.  


여행은
여행을
여행답게
갈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좋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

우선 좋은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캠핑이든, 홀로 즐기는 사색적 여행이든, 또 여행을 넘어선 모험이든 다 나름대로의 귀중한 의미와 경험, 추억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것들 중 하나를 콕 집어 이것만이 최고의 여행이라 주장할 수 있는 잣대를 과연 누가 지니고 있을까? 쨌든, 요점은 간단하다. 소모적인 여행(나쁜 여행)이 아닌 그 반대의 여행을 하라는 거다.  


필자처럼 여행가면 망한다. 예로 강릉여행을 가면 강릉이 줄 수 있는 것을 즐겨야지, 강릉이 줄 수 없는 것을 바라면 안 된다는 거다. 침울한 필자에게 강릉 바다는 단지 짙은 사색의 늪이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놀이동산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장소도 비상식적인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기대를 채울 수 없는 거다. 여행을 망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자면, 별 희한한 온갖 기대를 다 가지고 가는 거다. 그럼 제대로 망칠 수 있다.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이 현재 있는 그 장소에 머무르면 된다.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진심어린 감상으로,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그곳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모든 배경, 상황,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도)을 내 온 존재로 느끼면 되는 거다. 그렇게 한다면 그 여행은 당신이 기대하지 않았던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 줄 거다. 그리고 그 선물은 온전히 당신 것이 되는 거다. 평생.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Public Co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1 - Pixabay로부터 입수된 denkendewolke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2 - Pixabay로부터 입수된 Engin_Akyurt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3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hamed Hassan님의 이미지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