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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l 31. 2020

우울증 이야기 - Continuous Chapter 2

방향잡는 법 배우기

나는 항상 무엇인가에 갈급해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나는 평생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목적지가 떠오르는 순간 주체할  없는 갈망에 휩싸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초록빛 가득한 들판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떠올리면
 안에는 언어로 형용할  없는  기대와 기쁨이 용솟음쳤다.

허나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장소의 고유한 아름다움은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평생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갈망에 허덕였다.
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  손을 마주잡고 영원을 약속하기 전에는
 앞에 마주한 사람이 바로  사람인  알았다.

하지만  짧은 찰나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아직도  사람을 찾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장소와  사람의 존재를 '그것'이라 했을 ,
나는 그것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채워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직업도 아니었고 성취도 아니었다.

나는 돈과 재산도 가져봤고, 작은 권력도 쥐어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도 누리며 원하는 것은  붙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갈망은 채워진  없었다.

사람들이 부인할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영혼은 그것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그것을 '뮤즈' 칭하고, 누구는 '자유' 칭하며 
 누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고
 누구는 '편리와 아늑함'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이곳저곳에서 그것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한 것들은 그것 향한 추상적인 표지판일 뿐이었지 
결코 그것은 아니었다.

문명, 과학, 기술, 문학이 아무리 발달한들 
우리네 삶만  편하고  재미있고  오래 살게  뿐이지 
그것에는 도달할  없을 것이다.

예민하고 민감하여  속에 그것을 얼풋이 느끼며 추구하는 사람들은 
목적지 없어 보이는 세상살이에 극심한 '우울함' 느낀다.




앞 장에서 말씀드렸던 두 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은(아시는 분은 쉽게 맞추셨겠지만) C.S루이스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저의 친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계기도 C.S루이스 덕분입니다. 저는 글하고는 관련이 없는, 책과 글이라면 질색하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거든요.


작가들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 마지막 장을 쓰기 위해 며칠간 고민했지만, 저는 아직은 제가 언급한 이슈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일랑, 제가 접한 두 작가와 그들의 좋은 책을 소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봉착했습니다.


우선 정말 죄송합니다. 뭔가 위대한 말을 할 것처럼 앞장에서 부풀려놓고 이렇게 김빠지게 마무리를 지은 것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소개할 작가와 그들의 책은 결코 김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저의 글을 읽고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들의 글을 읽으며 여태 지녀왔던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C.S 루이스

저는 위에 시도 산문도 아닌 애매한 글로 저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애매한 글에서 등장한 ‘그것’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C.S루이스였습니다. ‘사람들에게 C.S루이스를 알려줄 수만 있다면 내 목적을 다 한 거다.’는 것이 글쓰는 일을 시작할 때의 저의 첫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뒤틀렸지만 말입니다.)


우연찮게 C.S루이스의 글을 접하고 난 뒤로 그의 책을 거의 다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 <<예기치 못한 기쁨>> - 홍성사, <<순전한 기독교>> - 홍성사, 두 책이 이 글에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우울증의 이슈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벌써부터 제목에서 기독교의 냄새가 난다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C.S루이스야 말로 어떻게 말하면 지독한 무신론자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책 또한 종교서적이라기보다는 철학과 형이상학을 동원한 삶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을 담은 자서전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이 특히 그렇습니다. C.S루이스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이기주의자였고, 자신의 삶을 어떡하면 잘 살아낼 수 있는지 그 누구보다 고민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또 명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느 때든, 어떤 환경이든 자신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법을 찾아내어 실행에 옮겼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기질을 닮은 구석이 있어 약간은 외골수적이고 대중적인 것을 싫어하며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살았던 그가, 만약 좋은 교육환경과 가족, 주변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랬던 C.S루이스가 자신의 그 기질(붙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 하는)을 청산하고 삶에 더 깊게 몰입하게 된 내용이 <<예기치 못한 기쁨>>에 담겨 있습니다. 앞선 책을 다르게 표현하면 ‘C.S루이스의 위대한 작가로의 여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이지만, 사실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 이 세상에 신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질서와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책의 제목에 기독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일반적인 ‘종교서적’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유를 들어 표현하자면, 일반 종교서적은 ‘제주도에서 잘 사는 방법’ 또는 ‘제주도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또는 ‘제주도에서 농사 잘 짓는 방법’과 같이 이미 목적지가 결정되어져 있는 사람이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면, <<순전한 기독교>>는 ‘사람들이 왜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하는지’,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왜 그런 것인지’, ‘제주도 말고 다른 섬은 없는지’와 같이 목적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과 <<순전한 기독교>>는 제가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가는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과연 그것에 당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조지 맥도널드

C.S루이스 다음으로 소개드리고 싶은 작가는 ‘조지맥도널드’입니다. 조지맥도널드는 C.S루이스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스승이라 여기는 작가입니다. 저 또한 C.S루이스의 글을 읽다가 조지 맥도널드를 알게 됐습니다.


조지맥도널드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C.S루이스의 글을 읽고서도 종교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있으시다면, 조지맥도널드의 글에 그보다 더 한 거부감이 있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C.S루이스는 글을 쓸 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러티브를 전개해간 반면, 조지맥도널드의 글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조지맥도널드의 글을 대중적인 ‘종교서적’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삶의 본질과 중심에 대하여 깊이 있는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C.S루이스 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라해도 삶의 방향을 잡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아무리 기독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일지라도 조지맥도널드의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를 소개하며 그 이유 또한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지맥도널드는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북미와 영국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판타지에 능하였고(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합니다.), 직접 동화를 지어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나니아연대기>>의 저자 C.S루이스는 자서전에서 조지맥도널드의 <<판타스테스>>를 읽고 상상력의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판은 없습니다.)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톨킨 또한 조지맥도널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저는 조지맥도널드의 글 중에서 <<북풍의 등에서>> - (시공주니어)와 <<조지맥도널드 선집>> - (홍성사, C.S루이스 엮음)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북풍의 등에서>>는 1871도에 발표된 판타지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하지만 다른 사람들 또한 느끼고 있는) 북풍, 즉 바람과 친구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북풍과 함께 북풍이 시작되는 북풍의 뒤편에 다녀오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북풍의 뒤편에 다녀왔던 것이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헷갈려 하면서도 그 나라에 대한 동경과 함께, 또 그에 대한 희망으로,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일상 가운데서 더 즐겁고 유쾌하고 열심히 모든 일을 행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풍의 등에서>>를 읽으며 삶에 대한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바, 저는 평생 바라던 ‘그것’ 때문에 일상을 올곧이 살아낼 수가 없었으며 방향을 잃고 헤맸습니다. 하지만, 조지맥도널드의 글에서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바라는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됐습니다.


<<조지맥도널드 선집>>은 C.S루이스가 직접 엮은 조지맥도널드의 짧은 글귀들입니다.

조지맥도널드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목사로서 활동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조지맥도널드 선집>>에는 C.S루이스가 조지 맥도널드의 글에서 발췌한 삶의 지혜가 가득 담긴 글귀들이 총 365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글귀들은 소설과 설교집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조지맥도널드 선집>>은 분명 기독교적인 요소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글의 각 요소들이 우리가 삶에서 갈망하고, 즐거워하고, 힘들어하는 각각의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애매한 인간’에서 ‘덜 애매한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기준과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마지막 글에서는 ‘우울’이란 단어를 많이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놀이를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은(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호수나 강이나 바다에서 즐겁게 노는 것 외에 다른 곳을 갈망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태로 스카이다이빙을 원하고 갈망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수개월 동안 지속한다면, 그 사람은 물놀이를 즐기기커녕 머지않아 “우울하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헤엄치고 있는 바다를 즐기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y pictures are CC0. When doing composing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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