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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Sep 01. 2020

이제 정말 눈치 안보고 지내시나요.

리얼리 자유로우신가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문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문화 중에 “눈치문화”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외국인이 아니시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문화가 어떤 것인지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청년, 장년 할 것 없이 이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의식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SNS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통로가 이전보다 더 다양해진 상황에서 앞서 말한 경향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문화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인터넷과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근래 사람들이 SNS를 하는 것을 보며 의문이 든 것이 있습니다. 그 의문은 “과연 눈치문화에서 정말 벗어난 것이 맞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SNS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영상도 공유하고 사진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댓글’과 ‘좋아요’도 남기며 삶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나눌 수 있지요. 저는 이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SNS를 하게끔 유도하는 주요한 요소들 중에 ‘인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떤 맛집이나 카페에 갔는지, 특정 운동을 얼마나 했고, 얼마나 좋은 몸을 가지고 있는지 인증합니다. 독특한 취미를 올리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에 대한 영상과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컨텐츠들이 독특하거나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면 종국에는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많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SNS를 하는 것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함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 또한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SNS에서의 인정과 공감이 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 경우도 여럿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인정’ 그 자체만을 원할 때 발생하게 됩니다. 


우선 위 단락의 마지막 부분, 인정과 공감이 스타를 만들어낸 경우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 경우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1. 스타는 몰입할 줄 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송을 얻는 스타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스타가 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인정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음악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음악을 즐길 줄 알고 실력이 있기 때문에 스타가 되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그것을 대중적인 음악으로 만들어 스타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실력’이 겸비되어야 합니다. 단지 대중의 인지도와 입맛을 신경 쓰기만 해서는 스타가 될 수 없습니다. 색깔 없는 애매한 아마추어가 되겠지요.

 위의 예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만일 음악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스타가 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유명해진 예술인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가 활동을 영위하는 활력소는 ‘대중의 관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종국에는 대중의 관심을 갈망하던 그 기질로 인해 더 외로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이것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2.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을 얻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사람들의 인정과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경우 또한, ‘인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정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최종 목적은 ‘사람을 돕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인정만으로는 좋은 일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말과 마차의 경우가 바뀐 사례도 있습니다. 인정과 관심을 얻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경우이지요. 이런 경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결론을 쉽게 단정 지어 버리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로 ‘영리 그 자체를 우선시하고 기업홍보를 하기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또한 선한 일이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첫째로, 영리추구는 말 그대로 경제적 용어로서의 영리추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기업이 어디까지 영리추구를 했으며 어디까지 좋은 일을 했는지 구분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특정 기업이 80% 선하네, 20%악하네 하며 쉽게 단정 짓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이슈는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누군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있어야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자유로운 표현을 하기 위한 곳이 눈치의 성지가 된다면?      


얼마 전, 강릉바다를 가보았습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바다를 보는’ 사람은 적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는 해변에 앉아 또 열심히 휴대폰을 만졌습니다. 바다를 앞에 두고 말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방법은 바다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가는 이유가 인테리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맛있고 데코레이션이 잘 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간 이유가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웅장한 자연경관을 지닌 명소에 가는 이유가 그 명소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다시 한 번 눈치문화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나 자신일 수 있게’ 눈치문화를 타파하는 일상을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좋아해서 하는 활동의 동기가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라면, 우리는 과연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 인증하고 인정받는 것 그 자체가 내 자유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기타를 치는 이유가, 서핑을 즐기는 이유가, 특정 음료를 마시고, 책을 읽고, 전시회를 가는 그 모든 이유가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아마 그는 A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A가 좋다고 하고, A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A를 싫어한다 말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줏대 없는 애매한 행색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위와 같은 상황에서 SNS를 하게 된다면, 그 당사자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즐기고 사랑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온갖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먹방을 보면 그 음식을 먹고 싶어하고, 여행영상을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특정 컨텐츠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추구하게 되고 찾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대중적인 행위를 하며 타인이 그 행위를 하는 자신을 얼마나 바라봐주고, 좋아해주는지 신경 쓰게 되겠지요.      


솔직히 말해 인정은 달콤합니다. 칭찬은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로 오는 만족과 감정은 일시적입니다.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녹아내리고, 곧 그 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인정은 특정 활동에 대한 기쁨을 배가 시켜 주며, 더 즐거이 그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인정 위에 일상의 모든 동기를 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실제로 그것을 하고 있는가?’하는 이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즐기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그 공유함에서 오는 기쁨 또한 누리며 살아갑니다. 허나 종종 공유에서 오는 기쁨이 궁극의 행복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능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숫자를 대는 사람보다 
읽었던 책을 나눌  아는 사람이 행복에  가깝습니다.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Felikss Veiland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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