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2025)

인연들에 대한 숙배(肅拜)

by 솔깃설깃


[작가노트]

인연들에 대한 숙배(肅拜)는

저와 인연이 되었던 이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는 동시에,

그 한 사람의 통로로 전달된 삶의 진실을 담은 글입니다.




이제 나는 너와 나 사이의 자리로 돌아와 있어. 이것은 우리 둘의 만남 이전의 자리와 비슷할거야. 무슨 말이냐면...... 까마득히 멀리 있었던 점 두 개가 인연이라는 한 실선으로 서로에게 이어져 와서 마침내 하나의 점이 되었고, 어떤 불발로 인해 다시 미지를 향한 점들이 되어 총총히 멀어져 간 그런 일들 말이지. 그래서 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궤적을 좆을 수 있는 그 자리 말이야.



아직은 네가 머물다 간 자리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해. 네가 애써 싣지 않으려 했어도 못내 남아 있는 너의 무게만큼, 네가 지난 자리마다 은근히 패인 자욱들이 눈에 잡히기도 한다는 거야. 너는 여기 없지만 네 체온의 온기, 너의 기온이 만든 정서, 너란 기후가 남긴 느낌의 지형들은 잔향처럼 여기 남아 얼마간 머무를 모양이야.


그래...... 난 괜찮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면 그 만남에는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참에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어. “사람의 만남은 이별의 과정과 이별의 퇴적물까지 포함한 것이겠다.”라고

그래서 납득하기로 했어. 너로 인해 내 대지에 못(淵)이 생기고, 절단 층이 솟아 올라도 그것은 서로를 부러뜨리지 않기로 한 불가피한 절충지대일 테니까. 그렇게 서로를 덜 다치게 하려 만든 방공호인 것이니까.



이건 사실일 필요도 없어. 만남이 만들어 낸 사건들의 사실이란 건, 만남으로 획득한 진실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쟎아. 그러니 나는 진실만을 기억할 거야. 하지만 그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도 난 널 알아야 했어. 무슨 말일지 알아? 우리 만남은 후처리 비용이 상당했다는 말이야. 적어도 나에겐 말이지. 나는 너를 알기 위해 비로소, 네가 없는 이곳에서 너에 대한 탐사를 해내야 했다는 거야. 사실을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나진 진실의 경로를 더듬어 보았던 거지.



진실은 이제 막 사건이 끝난 자리에도 있을 것이지만, 여기엔 잡음이 많거든.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각자 삶의 이야기들이 여기서 아우성치며 서러워하고 있기 때문인 거고, 우리와 무관한 일들의 잔요동 마저 때를 틈타 함께 동요하기 때문인 거야. 그래서 우리가 만나질 사건이 발원한 균열의 원시림을 방문해 본 거야.



나는 슬픔을 그렇게 헤아려 보았어. 슬픔을 표지판 삼아, 그 녀석이 입 닫은 채 처연하게 들어 올려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았다는 거지. 그렇게나 슬펐냐고? 그럼. 상실은 죽음보다 강한 것이니까. 죽음은 엄숙한 종료이지만, 상실은 살아 있는 내내 마주해야 하는 사건이쟎아. 죽음에는 책임이 없어. 그것은 완료된 결론이고 해석이 닿을 수 없는 저편의 일이니까. 하지만 상실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를 그 자장 안에 담고 싶어 하거든. 이건 도미노 같은 거야. 슬픔은 상실을 향해 달리고, 상실은 인간의 삶에 담긴 신비를 보게 해. 내가 헤아려 본 슬픔의 끝은 그러했어.



그리고 슬픔을 슬픔이 아닌 것으로 덮는 것은 무모해. 난 그걸 배운 적이 있거든. 그래서 슬픔에 수치심을 씌우지 않기로 한 거지. 슬픈 건 그저 슬픈 거야. 그리고 진실은 그런 진솔함에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해.

사람들의 마주침은 우연이라는 과녁을 향한 순간의 룰렛 게임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오래도록 저마다 걸어온 긴 여정의 길 위에 세웠던 퇴로 없는 마주침일 것이거든. 그래서 만남은 우리들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게 해.



우리는 다친 마음에 지난 인연들을 성마르게 접어 마음 깊은 곳에 품곤 해. 그렇게 저절로 빛바래 알아볼 수 없게 되길 바라는 거지. 하지만 인연의 수명은 그런 식으로 재촉당한다고 줄어들지는 않는거야. 사실 그건 정리가 아닌 유폐인 거고, 그렇게 유폐당한 인연의 이유들은 억울해서 원귀가 되기도 하는거쟎아. 그러니 우리는 한 번쯤은 그 이유들을 읽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한한 삶에서 마주한 제한적인 인연의 시한부 만남은 심지어 결핍이와 미숙이가 만난 한 편의 난투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핍이도 결핍의 어쩌지 못한 원인이 있었고 미숙이의 미숙함에도 사연이 있었지. 우리의 만남이라는 이벤트는 어찌 보면 꽃길을 생중계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하기 힘든 속내를 꺼내기 위해 벌인 한판의 굿인 건지도 몰라. 꾹 다문 입에 멍에가 씌워진 그 세월의 답답함을 풀어내는 살풀이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우리를 삼기기 위해 삶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살아가다 보면 숱하게 다치고 생살을 뜯기며 다시 그 흉터 위를 할퀴기도 할 만큼 고단한 날도 많이 있쟎아? 대개는 이유를 몰라 황망함이 대부분이고, 이유를 알아도 손 쓸 도리 없는 그런 시달림. 그처럼 몰아치는 삶의 막막함을 겪다가 보면 대개는 입을 닫게 되쟎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했을 거야.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차츰 버리기도 하며, 그저 하루만큼의 맷집을 더해가는 것이 삶이라고 애써 봉합하기도 할거고 말이야.



그럼에도 미쳐버리겠는 건 그런 삶에 다시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는 거지. 그것은 이루고 싶은 꿈 때문일 수도 있고, 가져본 적 없는 사랑, 닿아 본 적 없는 평안...... 그 무엇이라도 말야. 그런 생동 또한 삶이 우리에게 무작위로 떠맡긴 납득할 수 없는 선물이겠지.



무슨 말을 하고프냐고? 너무 뱅뱅돌렸지? 하고픈 말은 이거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처럼 만나진 만남이라는 때를 맞은 사건 안에서 어설픈 불발을 쑥스러워하며 뒷걸음치지는 않았으면 해. 각자의 결산보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각자 삶의 자원으로 잘 활용했으면 하는 거야. 너무 계산적일까?......

그렇지만은 않아. 우리가 만나졌다는 건 삶이 우리에게 떠맡긴 선물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삶이 우리를 몰아부친 서러움과 상처가 불거지기도 했다는 말이쟎아. 그때에 우린 다시 자신을 향해 움츠러들거나, 서로를 향한 미움을 반복하며 이제껏 써온 미봉책을 반복하지는 말자는 거야.



각자의 사정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서로의 정보를 발판삼아, 우리의 이유들을 한번만 이해해 볼 수는 없을까? 그 이해는 결국 슬픔과 상실을 꿰어내는 기이한 축복일지도 모르쟎아? 결국 그것을 해내더라도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을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쯤은 받아들이겠지. 삶이 주는 뜻 모를 고통과 선물이라는 이율배반을 말이야.



사랑하지 않았어도 좋아. 실수했어도 괜찮아. 풀어내지 못했어도 문제없어. 다만 이 삶을 받아들이고 이 삶에 수월히 올라타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만났다고 그런 고백이면 충분할 것같아. 네 몫은 네 진심으로 내 몫은 내 진심으로 잘 찾아지는 보물찾기였다고 그리 품어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 그러고 나면 절로 고개 숙여 서로에게 인사할 수 있을거거든.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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