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알 깨기

어느 소녀의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에 대한, 대신 쓴 일기

by 솔깃설깃


소녀의 부모님은 태어나고 몇 달 되지 않아 이혼했다.

어머니는 떠나갔고, 아버지는 홀로 남아 아이를 키웠다.

예상대로 부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자정 부근께에야 집에 들어온다.

아이는 학교에서 급식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급식실로 들어서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없이 가장 늦게까지 식사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함께 있으나 혼자 있으나

냉랭한 집안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아이는 자주 세탁이 안된 옷을 입고 다닌다.

메이크업에 향수에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껏 신경 쓰고 다닐 나이에 아이의 머리는

부스스하다 못해 새치가 눈에 뜨인다.


"무슨 일이든 네가 잘못한 것 같아서 겁이 나지?

다 네 탓인 거 같아서 힘들지?"


내가 물었다.


"사람은 아무리 잘못해도 잘못되지 않는대

다 괜찮은 거래. 사는 건 만만치 않지만,

결국 괜찮다는 걸 배우는 거래."


내가 다시 말했다.

아이는 멍한 눈을 꿈벅이더니 말했다.


"선생님 잠깐만요, 뭐라고 하셨어요?"

"사는 건 괜찮은 일이야.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나도 이 아이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 아이가 어린 나로 보였던 것 같다.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넨다.

"어떤 일이 네게 와도 결국엔 괜찮아.

넌 그걸 배울 거야."


상담을 마치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며 내 주위를

맴도는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그 아이보다 내가 더 잘 알기에 마음이 무겁다.


"선생님 이 자리니까 필요하면 또 와"라고 하자,


아이는 안심한 듯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못한

생애 최초의 알 깨기를 직감한 뒷모습이

위태롭고 저릿하다.


퇴근길 차창 밖에 그 아이와 나의 아이,

내 주변의 여러 아이들이 스쳐갔다.

이 아이들에게 미약한 부모 한 명 만을 의지해

자라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더 나은 방법을 동원하고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

분명한데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인가?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진실로 진실로 절실하다.


다만

그 아이가 하루 24시간 내내 힘들다는

악마의 꼬임에 귀 기울이지 않기를

자기가 부족한 존재라

사랑받을 수 없을 거란 거짓에

속질 않길

무엇을 경험해도

훼손되지 않는 상처받지 않는

자기를 만나게 되길


너의 삶을 그리 설계한

너의 이유가 있음을 존중하기에

지금의 좌절과 결핍이

네게 좋은 배움이 되길

너에게 이미 있는 힘을

다시 회복해 내길!

네 온전한 삶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력한 나이기에,

그리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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