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02.(일)
당신은 불시에 문득 그러고픈 마음이 드는 어느 때라도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가? 그침없이 이어지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눈빛이라던가 온기 전해지는 손길에서 우러나는 존재의 묵직함, 때때로 오가는 말끝에 맺히는 작지만 단단한 동의와 공감의 매듭이랄지...... 그러니까 우리를 쉬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는, <치유적인 의지처>가 있느냐는 말이다.
나의 지론 중의 하나는, “사람은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하고 자기로부터 발원하여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자신의 ‘삶 길’을 홀로 구축해야 한다.”이다.
그러니 삶의 모든 사건과 만남은 자기를 향한 이해로 가는 길이며, 그 목적 또한 자기를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니체가 말한 초인(위버맨시)은 유일한 삶의 여정을 각자 개척하는 인간 삶의 보편성을 말하고자 한 것의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타인이 만들어 나가는 경로의 독창성과 성패의 인과를 관조하며 그 아름다움에 찬탄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의 경로를 따라 복제하여 똑같이 따를 수는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 심겨진 어떤 힘은 그의 영혼을 움직이고 그의 육체를 독려하여 그가 가진 유일한 잠재력, 달란트, 영감, 욕구, 갈망, 이상, 그림자, 충동 등의 요소를 통합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무엇이 되어가고자 이끌고야 말기 때문이다.
이는 양극을 아우르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자기 보존적인 안전기지와 모험적인 확장의 영역 사이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는 그 자체로 매우 혼란스럽고 소란스럽다.
때로는 하나의 극으로 치닫기 쉽고,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 패배와 낭패의 징후는 매 순간 짙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숙명적 고독이란, 그 자신이 가진 대극(對極)의 숱한 요소들이 통합되어 가는 화학적 작용에서 숙성과 발현이 촉매되는 과정을 향해 준비된 연료이다. 고독은 땔감처럼 태워져야 한다. 한편으로 고독은 자기 존재 안에서의 정반합과 대통합, 영역의 재편성, 화학적 변성 등 왕성한 내적 분비물들이 들끓는 ‘멜팅팟’의 상태가 펼쳐지는 안정적인 배경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삶에서 반드시 ‘일정 시간의 홀로 있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독고다이다.’라는 슬로건에 나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로 홀로 있게 된다면, 그렇기에 인생에서 아무도 (진정으로) 만나지 않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신, 자아라는 개념조차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의 존재를 빌려야만 비로소 자아가 탄생한다. 타인이라는 외부의 중요 대상(생의 초기에는 어머니)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라는 자각(고통을 수반하는)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지금의 ‘나’라는 개체성역시 획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 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산과 나무, 구름, 새, 바람조차 자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눈에 보인다고 우리가 그것을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를 말할 때는 차이 이전의 그보다 앞선 전제 즉,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공통항을 지니지 못한 각기 다른 대상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도리어 사물들과 딱 붙은 존재가 되어 그 어떤 대상으로부터도 자신을 분리해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자신과 매우 유사한, 그러나 일부 혹은 많은 부분에서 역시 자신과는 다른 상호적이면서도 배타적이기도 한 외부 존재가 필요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이라는 동류가 있기에 우리 각자는 서로 닮았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보편>이 있음을 알게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것을 느끼지 않거나 같은 것을 지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타인이라는 대상이 있기에 개체적 자아들이 평행상태를 이루는 <차이> 또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인류 의식 발달의 초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켜나 나가고 자신의 개성을 발현해 가며 자기 통합의 과업을 달성하는 동안 타인을 참조하여 그런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을 이해하는 삶의 길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 역시 우리 삶의 필수적인 한 국면이다.
「윌든」에서 소로우는 “우리는 때로 인간을 공짜로 먹이고 입혀야 하며 아주 다정한 말로 그를 격려해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그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성의 가장 좋은 특성들은 과일 표면의 하얀 가루처럼 아주 부드럽게 다루며 지켜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그렇게 대해 본 사람만이 타인을 향해 그렇게 공짜로 좋은 것을 대접하고, 그의 좋은 것이 발아되기를 소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쯤에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물어야겠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과일의 하얀 가루처럼 아주 가치 있는 것을 그 가치에 맞게 소중히 다루는 동시에 충분히 격려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런 당신이라면, 서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 길을 개척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말이다.
때때로 타인에게 기대 쉰다는 그 의지의 강도와 뉘앙스를 당신은 이미 습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충분히 적절한’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다. 설혹 환경이나 상황이 적절치 않아 타인이라는 대상이 없다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기대 쉬는 그런 삶의 기예도 터득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절대자로서의 신 또는,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타인 앞에서 벌거벗은 존재가 되어보는 모험을 꿈꾸며 그러한 도전의 지대를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