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가. 어쩌다 이 도시, 이 집에 살고 있으며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 어떤 계기로 지금 여기의 삶을 살고 있나를 떠올려보면 소소한 사건으로 인한 동기였거나 누군가의 지나가는 한 마디였거나 순간의 선택이었던 게 대부분이다. 어쩌면 너무나 사소했기에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어떻게 변하든지 계기가 되는 작은 시작점이 있다. 인생의 최종 방향을 제시한 결정적 계기도 그 시작은 우연한 작은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또 미국으로 이주하고 마지막으로 브라질에서 생을 마감한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작은 시작점을 로댕과의 만남이었다고 말한다. 파리에서 유학하던 20대의 츠바이크는 어떤 작품을 써도 강렬한 한방이 될만한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고, 그가 쓴 모든 것이 진짜를 위한 일종의 연습에 불과하다는 낭패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평소에 존경하던 로댕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행운의 기회를 얻어 로댕의 집에 저녁 식사까지 초대받게 되었다.
소박한 로댕의 집에서 평범한 저녁 식사를 한 후 츠바이크는 로댕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츠바이크는 그에게 수십 년 동안 중대한 영향을 미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로댕은 작업대의 헝겊을 걷어내고 점토로 정교하게 빚은 여성의 조소 작품 앞에 섰다. 조소 주걱을 집어 든 로댕의 눈은 불타기 시작했다. 계속 고치고 다듬고 물러나서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초대한 손님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시간과 장소를 잊고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천지창조 첫날의 신처럼 창조 작업에 전념했다.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잊은 로댕을 본 츠바이크는 그 한 시간에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고 한다. 바로 ‘집중’이었다.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 전 마음을 가다듬고 사소한 일에 분산되는 의지를 진정 원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없던 결정적 한 방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로댕과의 만남이 시작점이 되어 츠바이크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작품을 세상에 발표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그의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남긴 기록이다. 그의 아홉 편 짧은 에세이들은 쉽게 읽히지만,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것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따뜻하고 겸손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지금 나에게 새로운 점이 되어주고 있다. 어떤 정신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쉽고 편안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란 어떤 글인지 얇은 책 한 권으로 알려주고 있다. 나에게는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걸 잊어버리는 로댕과 같은 열정이 있을까. 그 열정의 대상은 무엇일까. 있다면 불타오르다 금방 식어버리는 열정이 아니라 몇십 년 이어갈 수 있는 은은하지만 식지 않는 열정이었으면 한다. 삶의 최종 방향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통찰과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