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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성소는 어디인가요?

by Little Prince

카페 문을 열고 나서는 나는 세 시간 전의 내가 아니었다. 업무 스트레스와 대인 관계에서 온 복잡한 감정의 잔해들 대신 내 마음엔 희망과 평온함이 가득했다. 그것은 친구들과의 수다, 매운 떡볶이, 몰입도 높은 영화 한 편, 한번 시작하면 알고리즘을 타고 이어지는 유튜브 영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충만함이었다.


책과 노트 한 권을 들고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스타벅스, 이디야, 파스쿠찌 등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즐비한 가운데 달콤이라는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열 개 정도 테이블이 있는 작지 않은 카페였다. 한 테이블의 남성 두 명이 유일한 손님이었는데, 그 둘의 말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을 울리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밀크티와 에그 타르트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계산대 안쪽에서 타르트와 다른 디저트들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활자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장의 숲에서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을 만나면 나의 노트로 데리고 왔다. 이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감탄하며 내가 데려온 문장에 내 생각을 덧붙여 본다. 다른 테이블 두 남성의 대화는 이제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는다. 테이크 아웃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의 주문 내용도 들어오질 않는다. 작가와 나, 오직 둘만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칼 융은 스위스 취리히 호수 근처 볼링겐에 돌로 탑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 후로 33년간 이 탑을 증축하며 말년을 보냈다. 융의 ‘타워’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에게 이 타워는 인식과 재생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융은 그곳에서 교수이자 의사였던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누리고 재탄생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대표작 <기억, 꿈, 회상>을 집필했다고 한다. 단순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창조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빌 게이츠는 1980년대부터 일 년에 두 번 ‘Think Week’ 생각 주간을 갖는다고 한다. 북서 태평양에 인접한 삼나무 숲 속의 작은 이층 집에 머물며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시간을 보낸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하고 오로지 책을 읽거나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다. 태블릿 PC도 이 생각 주간에 구상했다고 한다.


카페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나오며 문득 칼 융의 타워와 빌 게이츠의 생각 주간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분산되었던 감각들을 하나로 모아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비록 교외의 돌탑이나 숲 속의 작은 집은 아니었지만, 아늑한 공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달콤한 밀크티와 타르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세찬 물살처럼 몰아치던 내면의 아우성을 잠재워준 책이 있었다. 자칫하면 부정적 감정과 생각에 잠식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나의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해 준 고마운 책이 있었다. 그 시간 덕분에 비워낸 마음을 희망과 긍정으로 채울 수 있었다.


칼 융의 타워와 빌 게이츠의 삼나무 숲 속의 공간과 시간을 꿈꿨었다. 언젠가 나도 그런 곳에서 재생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오늘 알았다. 우리 동네 작은 카페가 나에게 성소가 될 수 있음을. 몇 시간이지만 몰입할 수 있는 연속된 시간이면 충분했다. 교외의 근사한 공간은 아니지만 편안함을 주는 작은 카페라면 그곳이 나에겐 타워였다.


나만의 비밀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찾은 듯 기쁘다. 이제는 깊은 휴식과 재생이 필요할 때 시공간을 이동하여 나만의 성소를 찾아가야겠다. 책과 노트 한 권, 달콤한 밀크티 한 잔이 있는 그곳이 어디가 될지 벌써 설렌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우리의 생각이다.’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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