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5분 전의 당신과 같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 롭 다이얼

by Little Prince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망오름 정상이라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50m가량 되는 언덕의 끄트머리에 이르자 하늘과 맞닿은 평평한 정상이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벤치에 앉거나 서서 말없이 불그스름한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뽀얀 구름 사이로 붉은빛이 감도는 하늘 아래 하얀 풍차가 무리 지어 돌아가고 있었다. 조용히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숙연하여 목소리를 낮추었다.


새해가 시작됐다. 매년 1월에 맞이하는 아침 해는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365일 떠오르는 해인데도 말이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의식이 있어서일 터이다. 지난 12월에는 반 아이들과 함께 새해 목표를 담은 만다라트를 만들어 보았다. 만다라트는 오타니 쇼헤이의 목표 달성법으로 유명해진 계획표 양식이다. 9개의 칸이 그려진 정사각형 가운데 칸에는 이루고 싶은 새해 목표를 적는다. 그리고 둘러싸인 8개의 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 목표를 적고 8개의 목표를 이룰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다시 9개의 칸이 그려진 8개의 정사각형 안에 적는 방법이다.


만다라트가 나와 아이들의 새해 목표를 얼마큼이나 달성하도록 해줄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어떤 소망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나아가는 방향을 그려볼 수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새해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8가지 하위 목표 아래 세세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결국 실천하느냐 못하느냐가 성공의 열쇠이다.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까닭,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롭 다이얼은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에서 우리가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며 이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즉 행동하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당신의 마음속을 끝없이 맴돌고 있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 수년간 경험한 일이 뇌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믿음과 서사가 쌓인다. 그것이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아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머릿속 ‘나’라는 캐릭터가 스스로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거나 혹은 하지 못한다고 되뇌는 이야기에 따라 행동의 여부가 결정된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내’가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되뇐다면 결국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정체성이 행동을 불러온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면 목표를 세우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정관념(정체성)을 바꾸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쓰고 있는 페르소나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써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잊고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는 그 가면을 벗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앨런 와츠는 ‘당신은 5분 전의 당신과 같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나는 게으르고 쉽게 포기하고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포기하고 게으른 우유부단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꾸준히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듯 나에 관한 정체성을 새롭게 입으면 행동이 바뀌고 미래가 바뀌게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내가 행동하지 않은 대가도 내가 치르게 될 것이다. 새해 결심을 작심삼일에 머무르게 하여 다음 해의 나에게로 넘겨도 또 한 번 내가 치러야 할 일이 된다. 나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은 것이든 마음의 속삭임을 무시한 것이든 침대에 누워 인생을 허비했음을 깨닫는 것이든 모든 결과는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정체성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서 배경 음악처럼 들려올 나의 이야기를 쓰는 작업으로 롭 다이얼은 이키가이 다이어그램을 추천한다.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돈을 벌 수 있는 일, 세상에 필요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정리해 본다. 이 네 가지 영역에 모두 속하는 내용이 나의 ‘존재 이유’ 혹은 ‘삶의 보람과 목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의 삶의 목표를 바로 세웠다면 이제 행동만 남았다. 뚜렷한 목표가 코앞에 놓여있다면 밝아오는 새해에 맞추어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함덕 해변의 서우봉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빨갛고 동그란 해를 과연 볼 수 있을까, 붉은빛으로 물든 구름의 실루엣만 보다가 내려가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됐다. 우려와는 달리 일출 예정 시각을 조금 지나 구름 사이로 빨간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새로운 한 해가 제주 태양의 기운을 받아 밝게 펼쳐질 것 같은 희망과 기대감이 들어서였을까. 함덕에서 새해를 보고 온 지금, 온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태양을 떠올리며 새해는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 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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