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 독립, 첫 걸음
서른이 넘어 하게 된 나의 첫 독립.
독립을 하고나서 일기를 써보려했는데, 벌써 독립한지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멘탈이 무너진걸 겪었던 작년보단 마음이 평온해졌지만, 삶은 늘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게으른 완벽주의자에게 늘 완벽한 때란 존재하지 않고
여전히 마음의 여유를 찾아 헤메고 있지만.
이 곳에 내 상처와 서툰 모습들을 솔직히 꺼내놓는 것이 많이 떨리고 부끄럽지만...
나의 봄을 향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작은 발걸음이라도 떼어보고싶어서 시작해보는 나의 독립일기.
독립을 하려고 마음 먹은건, 생활에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본가가 같은 지역에 있어서 딱히 독립을 할 이유는 없었지만,
뭔가 막연하게 독립을 해야만 뭐라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삶은 늘 단조로웠고, 문구를 제작하고 브랜드를 혼자 운영하는걸 어쩌다 본업으로 해온데다,
내향인의 특성상 인간관계가 원체 많지않았는데... 거기에 삶의 불행과, 일을 하는데에 있어서 방향을 잃고 헤멘 시간들이 맞물려 안그래도 적었던 인간관계는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들은,
겁도 없이 건넸던 작은 온기는
가시가 되어 오래도록 나를 괴롭히다가
결국 대답없는 물음표만 남긴채 물거품처럼 흩어져 사라지곤 했다.
일하고 돈버느라 모르고 살아왔던 결핍들에 목이 말라 있다는걸,
작년에 나를 무너지게 한 일들이 방아쇠를 당겼고 서른을 넘기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꽤 오래, 조용히 금이 간 상태로 버텨왔다는걸.
인생은 원래 '존버'라고들 하지만, 나의 존버는 더이상 버틴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그건 마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듯한 기분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독립을 한다고해서 당장 뭐가 변할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냥,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들 외에도, 온전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무살이 넘은 후부터는 이미 경제적인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았지만,
나이는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집안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아이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가족들과 트러블이 생길때면, 정서적 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인생에서 한번쯤은, 혼자 살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24년 9월의 어느 날,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독립하려니 그동안 엄마로부터 제공받던 요리, 빨래 등등 생활의 편리함이 사라지는게 겁이났고,
예상되는 여러 지출들이 고정적으로 나갈것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독립을 마음먹고도 꽤나 망설였던 것 같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멘탈이 무너져있는데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걱정 대마왕에게 작년에 제주도 혼자여행을 무사히 해놓고도 또 걱정이 드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을 저질렀다. 그냥 월세집을 구하면 지출이 많아져서 부담이 될거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LH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주택 정보를 모두 알아보아 지원했고, 운좋게도 이걸 통해 전셋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서울이나 원래 살았던 경기권으로 이사갈까도 싶었지만, 아직은 가족들이 가까이 있는 곳에 함께 있고 싶었다. 직장도,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있으면 더 멘탈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지역이지만 조금 더 내가 살아왔던 경기도 느낌이 나는 서쪽으로 이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몇개월가량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네번째로 보러 간 집이 제일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집은,
1.5룸이었는데 주차장이 있는건 좋았지만 대로변에 있어서 뭔가 안정감이 들지 않는 집이었다.
방을 보러 들어가보니, 침대 하나 놓으니까 집이 꽉차서 뭔가 애매했다.
작은 방 한칸이 있었지만, 문의 위치 때문에 방을 활용하기가 애매하게 느껴졌다.
두번째 집은, 투룸이었는데 집의 구조는 괜찮았지만 많이 낡은 집이었다.
게다가 현재 세입자였던 남자가 큰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세탁기나 냉장고 등 옵션 가구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집주인이 그런 것들을 바꿔준다고는 약속했지만, 개냄새도 많이 나고.. 어쩐지 그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졌다.
세번째 집은, 아래와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붙박이장과 TV, 냉장고 등등 옵션까지 갖추고 있어서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 집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주차할 곳도 많았다..!
다만 한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1층이라는 점이었다.
1층이라 집이 좀 어둡고 습한 느낌이 있었고, 창문을 열기가 애매했다.
창문에 방범창도 없어서 보안이 많이 걱정되었다.
아, 그런데 이 집을 보러갈 때 나름 재미난 일(?)이 있었다. ㅋㅋ
집을 보고 싶어서 중개인한테 연락을 했는데, 중개인이 문자로 본인의 사진이 담긴 명함을 보내주었다.
근데... 웬 존잘 미남이 있길래 확대해서 몇번을 보았는데도 존잘인 것이었다.
정말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어서 집을 보러갈때도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실제로 본 중개인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잘생긴게 맞긴 맞았으나...
음... 사진과는 인상이 달랐고, 마치 나이트 클럽에서나 볼 법한 부담스러운 실크 재질의 셔츠에 정장 바지, 그리고 거의 단발에 가까운 긴 파마머리, 거기에 빨간색 외제차를 타고 한손에는 클러치백을 들고 나타났다.
사진에서 본 수트차림의 깔끔한 본부장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진 속 남자와는 거리감이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치 빌리지도 않은 돈을 얼른 갚아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정중하고 예의있는 분 같았기에 누군가를 외모로만 판단하려거나 재단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사진만 보고 신뢰하면 안된다는걸 다시금 깨달았다.
뭐, 존잘을 발견하는 건 어쨌든 재밌고 신나는 일이었다...!
1층이라는 점 때문에 일주일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래도 이만한 집이 없을 것 같아서 계약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 사이에 집이 이미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이렇게 깨끗한 집은 아무리 찾아도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집을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번째 집. 현재 내가 살고있는 집이다.
세번째 집을 보내주고 얼마 후, 새로운 매물이 올라온걸 발견했다.
집 컨디션이 사진상으로 꽤나 괜찮아보여서 바로 연락하고 보러갔다.
건물은 낡았지만 실내가 리모델링된지 얼마 안되어 정말 깨끗했다. 살고있는 세입자도 젊은 여자분들이라 상태가 깔끔했다.
집의 위치도 좋고, 주방도 크고, 화장실도 넓고, 방도 두개인데 거실이 있는 구조라서 마음에 쏙 들었다.
집이 밝게 느껴져서 뭔가 안정감이 들었다 해야할까..?
다만 여기도 1층인게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히 1층이지만 베란다가 있고, 지면에서 높아서 1층같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집에 에어컨을 제외한 옵션이 전혀 없는 것과, 주차하기가 어려워보였지만...
그런 것까지 바라기엔 욕심이라고 생각했고,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주차문제로 꽤나 불편함을 겪게 될줄은 이땐 몰랐다...)
그리고 어쩌다 주인분을 만났는데 보증금도 조절해주시고 좋은 분 같아보여서 계약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 집을 보러온 사람이 나말고 또 있었는데, 어쩐지 노리는 다른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했고, 세번째 집을 아쉽게 놓쳐버렸었기도 했기 때문에 얼른 계약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번째 집을 계약하게 되었고, 드디어 이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정말 독립이 눈앞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었다.
모든게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새로운 바람이 날아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것들이 천천히 멀어지고, 낯설지만 작은 희망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