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일기 : 어쩌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03. 반짝이던 것들이 멀어진 자리에서

by 작은 소나기
KakaoTalk_20250724_201045300.jpg 달을 담고 싶어서, 해질 무렵의 어느 날.




드디어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방에 그다지 애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떠나려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족들이 지내고 있으니 이 공간을 영영 떠나는 건 아니지만, 이제 독립하면 다시 돌아와 여기서 생활할 일이 없을 테니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괜스레 시선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서 방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별 거 아닌 것들에도 마음을 내어주고 이름을 붙이고,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면서 내가 이름 붙였던 꽃들을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하다 내가 작아질지도 모른단 걸 알았을 때조차,

나의 다정을 쏟아붓곤 했다.

그래서일까, 작은 것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마음을 다했던 것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꼭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이 방에도, 그랬나 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나름 내 방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웅크리고 있던 날이 많아 비록 잘 가꿔주진 못했지만, 안녕.

나를 잘 품어주어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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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가구만 트럭에 실었다.

나의 소중한 침대와 작은 행거 두 개, 책상과 의자, 선풍기. 그리고 꼭 필요한 옷들과 잔 짐들만 가져가기로 했다. 당장 필요 없는 책이나 잡동사니들은 본가에 두기로 했다.

정말 필요 없거나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는 것들, 더 이상 입지 않거나 낡아버린 옷들은 이사하는 참에 모두

정리해서 버렸다.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버리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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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기 전에 가지고 있던 짐을 정리하다가, 이런 고대 유물들도 발굴했다.

아주 어릴 때 내가 소중하게 아끼던 것들이라, 어른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나는 이렇게 내 마음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다.



너무 소중해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모아두기만 했던 포켓몬스터 카드, 800원짜리 에그몽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하며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하나씩 모았던 작은 장난감들. 저 장난감들 퀄리티가 꽤나 괜찮았었는데. 늘 슈퍼를 갈 때마다 더 사모으고 싶은 마음이 컸었지만 그 당시의 꼬맹이에게 800원은 너무나 큰돈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 하찮아 보이는 게 많아서 왜 저런 걸 모아놨었지 싶은 것들도 꽤나 많았다.

한 때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도, 쥐어보려고 애썼지만 내 손에서 모래알처럼 쉽게 흘러가버린 것들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 다시 뒤돌아 보았을 때는 하찮아 보일 수 있기를.

마음 놓고 품에서 놓아주어도 괜찮을 수 있기를, 그때는 그것들이 더 이상 내게 반짝이는 것들이 아니기를.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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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이사오자마자 대충 짐을 놓아둔 나의 작은 우주의 첫 풍경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있었는데, 사실 이 풍경을 보았을 때 그 그림을 만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해 둔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집 말고,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나의 집이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냥 평범한 집이 될 것 같았다.

그 그림을 당장 만들기에는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뭐, 일단은 그냥 지내보기로 했다.



원래는, 이렇게 평범한 집에서 예쁜 집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독립일기에 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일기를 쓰는 지금도 그냥 평범한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지만 아직 나의 독립은 끝난 게 아니고,

느리지만 천천히 무언가를 하나하나 해가고 있으니까 그냥 이대로 담아보려 한다.

마음이 내킬 때, 조금씩 색을 입히는 걸 시도할 수 있겠지...!



그렇게 12월이 시작되는 첫날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는 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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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일이란, 의외로 이상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밤마다 고주파 소음 같은 것이 자꾸만 들려서 그것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나름 연구한 결과 다른 집 가전제품에서 나는 소리인 듯했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했다. 고주파 소음뿐만 아니라, 방음도 잘 되지 않아서 다른 집의 티비 소리나 전화하는 소리도 가끔 들려오곤 했다. 이런 것들에 예민해진 탓이었는지 때로는 우리 집의 냉장고 돌아가는 소음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곤 했다.



밥을 먹을 때는, 자꾸만 아이패드로 유튜브라던가 넷플릭스 같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원래 밥 먹을 때는 영상을 시청하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같이 밥 먹으며 이야기하던 가족이 사라지니 그걸 대체할 것을 무의식적으로 찾는 듯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공기가 싫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재밌어서, 혹은 보고 싶어서 본다기보다는 마음이 허하고 심심해서 뭔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영상 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밝아 보였던 집이 막상 이사 들어오고 나니 어둡게 느껴지는 게 너무나 싫었다.

불을 다 켜놓아도 어딘지 모르게 어두칙칙했다. 커튼 때문인 것 같아서, 애써 고른 커튼도 미워 보이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등이 거실 넓이에 비해 좀 작은 편이긴 했었다. 그래서 삼촌한테 부탁해서 전등을 바꾸니 집이 좀 밝아졌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온전히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이라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원래도 혼자 하는 걸 나름 잘하는 편이었지만, 처음 겪는 낯선 시간들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방을 꾸미고, 맛있는 것을 해 먹고, 서툴지만 처음 음식들을 만들어보고...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줄 알았는데... 독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생각만큼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은 이 공간이 아늑하지 않고, 꼭 숙소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주차 때문에 불편하고, 1층이라 창 커튼을 걷는 것이 신경 쓰여 집안이 어두운 게 너무 싫었다.



자꾸 싫은 점만 보이는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들 땐 아직 어린 내 사촌동생 준원이처럼 그냥

울어버리고 싶었다. 우습지만 이런 건 울 일도 아닌데 말이지.

아마도 나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갈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들이, 아직 낯선 내 집에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혀보려고, 책상에 앉아 오래된 일기장을 펼쳤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고요하지만 폭풍이 휘몰아치는 외로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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