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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Dec 06. 2021

02. 부디 함께여서 행복하길

엄마의 욕심

올 한 해 내내 꼬미는 마치 '질투의 화신'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고 예쁜 별에서 천사 놀이를 하던 사랑스러운 나의 딸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래, '동생이라는 것'의 등장을 바라보는 첫째의 마음은, 바람난 남편이 처음 보는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것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과 같다고 했던가. 아니면 한물 간 연예인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과 유사하다는 순화된 표현본 것 같기도. 어쨌든 이토록 급격하고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아주 어린 나이에 겪는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며 그녀의 변신을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엄마의 도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해 내내 실패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보고 싶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의 또미와 대화를 시도해 보았고,  '또미가 누나에게 전하는 선물이래' 라며 육아서에서 배운 대로 꼬미가 좋아하는 영양제 젤리로 선물공세도 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 처음 집으로 들어오던 날 - 역시나 글로 배운 대로 -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꼬미가 보지 않도록 남편과 '동선'도 철저히 짰다. 둘째가 울어도 첫째에게 먼저 달려가야 한다고 했고 첫째와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주옥같은 가르침들을 수행하고자 두 번의 제왕절개 이후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가 모유수유를 하는 모습이라든지, 아기와 둘이서 누워 잠자고 있는 장면이라든지, 아주 간혹 엄마가 아기와 눈을 맞추고 웃고 있는 현장 등을 보면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우울-분노-부정의 단계로 다채로운 행동변화를 보여주었다. 첫 단계인 우울에서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어머니, 신경 쓰이실까 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지만 꼬미가 어린이집에 와서 아~무~런 의욕도 없이 누워서만 있다가 가요.'라고 전화를 할 정도였다. 이 우울의 단계는 다행히도 꼬미에게 언제나 진심인 남편의 지극 정성 밀착 케어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놀이터를 가고, 좋아하는 간식을 손에 쥐여 주고, 그녀가 가장 즐겨하는 '거꾸로 자라는 식물' 놀이를 온몸으로 해 주는 등 - 를 통해 겨우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쓸쓸한 뒷모습


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분노의 단계는 가장 위험하기도 했다.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동생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어 울리고, 꼬집고, 눈도 찔러보는 등등 각종 폭력을 행사했다. 당연히 엄마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이때 엄마는 조금 더 현명해야 했었지만, 엄마도 이성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출산 후 널뛰는 호르몬에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데다가 아기는 밤낮없이 울어재끼고 토하기를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그 와중에 틈틈이 코로나를 뚫고 대학병원에도 가야 했으며 빨래는 산더미이고 집안은 엉망인데 뭐라도 먹어야 했다. 여차 저차 한 사정으로 양가 어머니들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고 - 그녀들은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 새로운 전염병이 너무나 신경 쓰여서 산후도우미를 찾아볼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규칙!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꼬미에게 수도 없이 반복하게 하는 내가 만든 첫 번째 규칙.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훈육을 하고자 규칙을 읊도록 했지만, 이성을 잃은 엄마는 -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 세 차례 정도 아이의 엉덩이를 스매싱했다.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 울고 있는 둘째를 품에 안고 엄마에게 혼나 울고 있는 첫째는 아빠 앞에 앉혀둔 채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온 나에게 남편은, 아까의 그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나직이 말했다. 나와 달리 차분하고 침착한 남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다.


규칙을 외치고 엄마에게 혼나기를 반복하며 꼬미의 분노는 조금씩 조절되는 듯했다. 그다음엔 부정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이 '또미야~ 누나가~'로 말을 시작하기만 하면 '나 누나 아니야! 누나 아니라고! 누나 싫어!'를 외쳤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즈음엔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이야기도 자주 들었었다. 동생이 태어나면 다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닐까요, 애써 차분히 말해보았지만 꼬미가 유독 다른 점이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니, 전문가의 말이 그러하니, 무시할 수 없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대학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에 (겨우 겨우 시간을 내어 가서) 엄마 상담도 따로, 아이 검사도 따로 받았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 없었다. 다만 아이의 특성을 조금 더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의외로 엄마 상담 시간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육아 태도와 방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과 만나서 꼬미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나의 성장과정의 어떤 일들이나 감정이 꼬미 육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 당연하겠지만 - 깨닫게 되었었다.


나에게는 두 명의 동생들이 있다. 그래, 나 또한 성장과정 내내 '동생들 없이 외동으로 자랐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장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 그들은 정작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 너무나 무거웠고, 나와는 성향이 다른 두 동생들은 내가 다루기에 쉽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늘 내게 이해와 양보를 바라고 동생들에게는 관대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차, 정작 나야말로 꼬미에게 지나친 이해와 양보를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교수님과의 상담 이후에 - 생뚱맞게도 - 동생들은 성장과정 내내 나 때문에 얼마나 고달팠을까 싶어서 뒤늦게 많이 미안해졌었다.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나의 엄마는 그 시절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맏이인 나에게 그렇게 의지하고 싶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하기도 했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딸에게는 '여유'를 노력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떨지 않고 그저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며 웃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추락방지 방충망은 미리미리 설치함


말이 쉽지. 여유 있는 엄마가 되기란 오늘도 너무나 어려웠다.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려고 오랜만에 피아노 뚜껑을 열었더니 아이들은 피아노 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또미랑 사이좋게 노는가 싶더니 또 아기를 아프게 해서 집안에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또미처럼 먹여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또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나도, 아이들도 매일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내일도 꼬미와 또미는 열심히 울테고 성장 단계마다 또 다른 갈등, 무관심, 또는 협력의 관계를 맺어갈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서서히 인정하며 살아가는 어느 날, 둘이 함께이기 때문에 힘이 된다는 것을 - 엄마도 너희의 이모와 삼촌의 소중함을 아주 늦게 깨달았었지만 - 언젠가 느끼게 되는 날이 온다면, 엄마의 욕심은 성공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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