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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Dec 08. 2021

03. 로보카폴리의 역습

눈치게임 모르니?

'엄마는 뭐 할 거야?'

'엄마는.. 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려 뜸 들이는 중)'

'엄마는 엠버 해! 그게 좋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또미는..'

'또미는 헬리 할까? (헬리는 구조대 중에서도 비중이 조금 낮음)'

'그래! 또미는 헬리'


'아빠! 아빠는 뭐할래? (달려간다)'

(제발 대답 잘해라 아빠야, 제발 대답 잘해라.)

'아빠는 로이!!'

'안돼!!!! 로이는 내가 한단 말이야!! 안돼!!!! 으아아아앙 (이하 대성통곡)'

'꼬미야, 그럼 아빠 폴리 시키자 (그래도 수습불가)'


남편아.. 눈치게임 안 해봤니...




아침은 언제나 바쁘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모두 새벽형 인간들인 덕분에 우리 집의 하루는 꽤 일찍 시작하지만 그래도 분주하긴 마찬가지. 부지런한 남편은 가장 먼저 일어나 살금살금 새벽 운동을 다녀오고, 아침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출근 준비를 한다. 또미는 눈 뜨자마자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 전식-본식-후식의 순서를 맞춰서 물을 마시고, (완료기) 이유식을 먹고, 쌀 과자나 과일을 손에 쥐어주어야 아쉬운 식사를 겨우 마무리한다. 또미가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동안 꼬미는 신나게 논다. 밥 먹으러 오라고 아무리 불러도 안 오고, 또미처럼 먹여주어야 한다고 또 드러눕는다. 협조적인 날에는 앉아서 두 숟갈 먹고 다녀오라고 설득해보고, 비협조적인 날에는 눈 질끈 감고 불러서 먹이고, 보내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 또미 손과 입을 씻어서 내려놓으면 누나 따라 기어 다니다가 응가를 한다. 엉덩이를 씻기며 세수까지 완료하고 또미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로션을 발라 외출복으로 입혀놓는다.


자, 이제 꼬미 차례. 남은 과제는 먹이고, 양치시키고, 세수시키고, 로션 발라 옷 입히고, 머리 묶고, 마스크 걸어주고, 외투 입혀서, 신발 신으라고 외치고, 또미를 유모차에 앉혀서 (어린이집 가방도 싣고), 어린이집으로 (드디어!) 향하는 것이다. 이 모든 단계가 결코 쉽지 않다. 중간에 갑자기 돌발변수 - 하나가 다른 하나를 괴롭힌다거나, 또미가 토한다거나 등등 - 도 종종 발생한다. 물론 그 사이에 엄마도 - 상당 부분 포기하긴 하지만 - 재정비를 해야 한다. 식탁과 부엌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가면 더욱 좋지만 이 또한 우선순위에서는 밀린다.


엄마의 아침은 바쁘지만 꼬미의 아침은 단순하다. '놀자!' 꼬미는 아침마다 새로운 놀이를 잘도 만든다. 아, 물론 심기가 불편한 날에는 울면서 일어나는 날도 있고 본인의 애착 이불인 새 이불을 질질 끌고 다니며 여기저기에서 누워있을 때도 있다. 하이텐션도 로우텐션도 모두 감당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엄마 입장에서는 하이텐션이 마음이 편하다. 오늘 아침에는 다행히(?) 하이텐션이었다.


네 살이 되면서 혼잣말하며 노는 날이 많아지더니 요즘은 본인만의 상상의 나라에서도 잘 논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캐릭터라고는 뽀로로와 타요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최근에 나의 육아 편의를 위해 남편이 다운로드하여준 로보카폴리를 모니터로 종종 보여줬더니 푹 빠져서 살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구조대 출동!' 하며 로보카폴리 놀이를 하던 참이었다.


행복하던 그녀의 로보카폴리 놀이는 남편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끝났다. 남편아, 왜 로이가 그녀의 최애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니. 아쉬워할 여유도 없다. 그는 출근 준비를 끝내고 총총총 집을 나섰다. 남은 것은 나의 몫, 무엇으로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돌려야 다시 원활한 준비 과정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인가. 대성통곡은 끊이지 않는다. 하.. 그녀가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옷 고르기 선택권'을 제공한다. '늘 입고 싶은 옷 꼬미가 골라볼래?'  


아들아 너는 왜 눈을 감고 누나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니


촌언니에게 받아서 깊숙한 곳에 잘 넣어두었던 조카의 개량한복을 어떻게 알고 찾아 꺼낸다. 핑크 드레스가 마음에 쏙 든단다. 오늘 바깥놀이 나가면 어떡하지, 걱정할 틈도 없이 입고 나온다. 치마 안에 얇은 바지를 입히고 겨우 양치-세수-로션-머리 묶기 등의 과업을 수행한 후 시계를 보며 나가려는데 다시 드러눕는다. 엄마는 호흡을 고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이의 놀이는 참 신기하다. 엄마가 알려주지 않아도, 다른 누가 노는 것을 많이 보지 않아도, 비슷한 시기의 또래들이 하는 놀이를 비슷하게 한다. 처음에는 엄마 옆에서만 붙어 있더니, 움직이는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고, 닫혀있는 것은 다 열어보며 본인만의 놀이를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쌓거나 늘어놓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하고. 말이 늘면서는 상상의 세계에서 종알종알 혼잣말하며 잘도 논다. 엄마는 그저 옆에서 관찰할 뿐. 혹시나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을 치우거나 옆에 베개나 쿠션 등을 가져다 둔다. 가끔 아이가 놀이 안으로 초대해주면 들어가 보기도 하고 집안일에 정신없을 땐 거절하기도 한다. 요즘 또미는 한창 기어오르고 내려오는데 재미를 붙였고 꼬미는 역할놀이와 옷 꺼내서 마음대로 입어보기, 서툰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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