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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Dec 17. 2021

05. 꼬미가 고3이냐

feat. 4세의 사교육. 영어는 어떡하지?

"어린이집 방학이고 하면 그냥 와서 한 열흘 있다가 가면 될 것이지. 꼬미가 고3이냐!"


크리스마스 즈음 친정에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서 부모님께 일정을 여쭤보았다. 며칠 동안 다녀갈 예정이냐는 물음에 아마도 사나흘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했더니 엄마는 짧은 일정에 아이들이 혹시나 힘들까 봐 걱정이고 아버지는 내심 서운해하셨다. 하필(?) 12월의 마지막 주가 어린이집 방학기간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리셨다. 그러면 더 놀다가 가지, 라는 말씀에 꼬미 수업도 있고, 했다가 결국 목소리 큰 경상도 할아버지 샤우팅 (본인은 전혀 화난 상태가 아님) 시작하신다. "아니 네 살짜리가 무슨 고3이냐!"


고백컨데, 나는 사교육에 관심 많은 엄마다.




꼬미가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시절. 임신-출산-육아 프로세스에 무지했던 나는 임신 중 검사 항목에 '기형아 검사'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었다. 마침 홍콩에서 잠시 친정에 들어와 있었던 때였다. 친정 근처의 (분만 예정이었던) 병원에 처음 가서 방문 기록도 남기고 해당 검사도 받기로 했었다. 피를 좀 뽑은 후 정밀 초음파 담당 선생님께 가서 같이 아기를 살펴보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가 코예요, 여기 손도 있네요, 라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다가 점점 말이 없어졌었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누워있었다. 다른 이야기는 의사 선생님께 가서 들으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내 순서가 되어서 의사 선생님께 갔더니 아까 했던 초음파 검사를 또 했고, 갑자기 이런 가능성, 저런 가능성, 어쩌고 저쩌고, 2차 검사는 의미가 없고, 어쩌고 저쩌고. 전혀 예상치 못한 말들을 늘어놓았었었다.


임신 이후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늘 남편이 동행했었다. 그때는 마침 남편을 홍콩에 두고 대구에 들어와 있었다. 그날은 마침 친정 부모님께서 일정이 있으셨다. 처음으로 씩씩하게 혼자 병원에 갔었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 방에서 나와서 보니 다른 산모들이 와글와글 씩씩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방 안에서 40분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일단 울었다. 진정한 후 나를 데리러 오신다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은 대로 최대한 담담하게 설명을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말하는 정밀 검사 -라고 했지만 내가 할 일은 피를 몇 통 더 내어주는 것이었다 - 를 하고 있어라, 하시더니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타나서 결제까지 마무리해 주시고 나를 데리고 나갔었다. 별일 없을 거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하시면서.


얼마나 기다렸던 아이였는데. 얼마나 기뻤는데. 확률이 어쩌고 저쩌고, 담당 주치의로서 (그날 처음 봤는데?) 산모를 생각해서 어쩌고 저쩌고. 나를 위해서 해 준 이야기들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폭풍 검색 끝에 서울의 유명하다는 병원에 서둘러 예약을 했고 다른 검사를 한번 더 받았었다. 그리고 나는 홍콩으로 출국해야 했다. 여러 날 마음 졸이고 또 졸이다가 두 병원의 검사 결과는 홍콩에서 들었다. 다행히 '확률상' 괜찮다고. 그런데 산모에게는 이 확률상이라는 말이 참 의미가 없었다. 0.00001%라 하더라도 내게 일어나면 100%가 되는 것 아닌가. 아예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안 들었어야 했다. 남편은 두 곳에서 모두 괜찮다니까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하며 그날 이후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속 마음이야 알 수 없었지만. 


나의 마음자리는 어지러웠다. 태교가 중요하다는데, 임신 기간 중 엄마의 정서 상태나 마음가짐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나의 불안감이나 여러 생각이 혹여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야 괜찮은 척할 수는 있지만 아이는 내 안에 있는데? 아이에게도 그 괜찮은 척이 되나? 그렇게 꽤 오랫동안 여러 감정들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어느 날 결론을 내렸다.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떠올리는 여러 생각과 감정 중 좋지 않은 것들은 아기의 방 문 앞에서 모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었고 (그 전엔 유기농만 먹어야 하나 전전긍긍하면서 배달음식도 많이 먹음) 이런저런 마음과 감정이 흘러가는 것은 그런대로 두었다. 걱정도 죄책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모습의 아이가 내게 오더라도 나만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감사하게도 꼬미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태어나 주었고 지금까지 팔 세 번 빠진 일 빼고는 (그중에 한 번은 남편이 끼워 넣음) 다행히 별다른 병치레 없이 잘 자라고 있다.


또미는 꼬미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 와서 온 줄도 몰랐다. 한참 후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고서는 남편도 나도 한동안 당황했네. 그래도 꼬미 때 한번 경험해 봤다고 조금 더 쿨한 산모가 되어 있었고 태교는 엄두도 못 냈다. 꼬미 책 읽어주면서 그래 이게 태교다, 꼬미 잡으러 뛰어다니며 이게 운동이지, 하고 살았다. 웃고 화내고 울고 소리 지르고 하면서 아가야, 너도 희로애락오욕의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했다. 무탈하게 임신 기간이 흘러간다 싶었는데 출산 때부터가 조금 더 다이내믹했다. 제왕절개 후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한 아이를 인큐베이터째로 구급차에 실어 보내는데 - 아무리 얘기해도 보호자로서 내가 동반할 수는 없다고 해서 남편이 꼬미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뛰어오기까지도 얼마나 힘들었던지 - 그 추운 겨울날 추운지도 모르고 환자복 하나만 입고 손목의 링거는 빼버린 채 길바닥에 앉아서 엉엉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내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도 몰랐다. 어쨌든 그래도 한번 해 봤다고 그날 딱 하루 이후로는 마음을 다스리며 최대한 차분하게 버티고 버텼다. 또미는 병원에 정말 많이 다니며 첫 돌까지 왔다. 편도가 부어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밤새 닦아주다가 오늘 아침에도 병원에 데리고 다녀왔지만, 두 아이 모두 건강하고 씩씩하게 내게 와주어 고마울 뿐이다.  


그래, 그렇게 아이들을 맞이하며 나는, 나의 육아 목표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못 박았다.


   



그런 일들이 불과 얼마 전이라고,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지라 사교육에도 욕심을 내는 엄마가 되어있다.

(아 나란 인간이여)


홍콩에서 시위 등을 피해 들어올 때 우리는 '잠시' 서울에 머무른다 생각했었다. 나는 서울에서 어린이집 보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었다. 아니 역대급 저출산이라면서? 산후조리원에서 어린이집 대기 신청하는 것을 몰랐던 나에게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듯 보였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도 숨 쉴 구멍이 필요했고 아이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여겼다. 그래서 또 폭풍 검색. 아이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작은별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해 주는 남편 덕분에 쉽게 결정했다.


그렇게 꼬미는 돌 전부터 '오감'을 발달시켜준다는 방문놀이수업 무려 두 개나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 정도씩 하는 수업. 아이는 매우 즐거워했고 나도 차 한잔 마실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가 물감만 보면 손은 물론 얼굴과 발에 다 문지른다는 것과 새로운 물건만 만나면 시끄럽게 두드려 본다는 점이지만. (누나 수업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던 또미에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청소 난이도 최상) 그래 그렇게 너희들의 두뇌가 발달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보자. 지난여름부터는 갑자기 어디서 '실험'이라는 단어를 주워듣고 와서는 자기도 오빠 언니들처럼 과학 실험이 하고 싶다고 해서 엄마의 본분에 맞게 또 열심히 알아보았다. 집에서 과학실험(이라 쓰고 비커에 물 담아 보는 수준이라고 밝힘)을 해 주는 수업이 있는데 다섯 살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사이즈는 좀 커서 여섯 살처럼 보이고 말이 빠른 편이라 수업이 가능할 수도 있답니다.' 선생님께선 시범 수업을 한번 해 보고 결정하자고 하시더니 할만하겠다고 하셨다.

 

'엄마 과학은 정말 멋진 것 같아!' 

몇 번의 수업 이후 꼬미는 명언을 남겼고 꼬미 아부지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여 그의 근로의욕 고취에 기여하였다. 참, 올 한 해는 토요일마다 아빠와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에서 하는 '분홍반' 수업도 갔다. 이 수업은 꼬미의 질투가 하늘을 찌를 때 또미와 내가 부디 주말에 평화의 시간을 아주 약간만이라도 좀 가져보고 싶어서 큰마음먹고 보내버렸었다. 남편은 두 시간 동안 선생님이 해 주는 것은 없고 아빠와 놀다 오는 것이 전부라며 돈 아깝다고 툴툴거렸지만 자발적으로 2학기 때도 등록하고 열심히 다닌 것을 보면 얻는 것이 있긴 한 것 같다. 꼬미는 물론 분홍반 수업을 아주 좋아했고.


꼬미의 복인지 나의 복 일지. 그렇게 만난 선생님들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셔서 그동안 정도 많이 쌓이고 음식도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분홍반 선생님과는 시대에 발맞춰 zoom으로). 오감 수업은 하나는 또미에게 넘겨주기로 했고 하나는 선생님 개인 사정으로 이별하게 되었다. 아쉬움 가득하지만 그동안 잘 키워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과학수업은 내년에도 '과학놀이'로 계속할 것이고 분홍반은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섯 살 맞이 유치원 등원과 함께 사교육 재편 - 오감 수업 시간을 이제 진짜 미술 시간으로 바꿔줄까? 등 - 을 하느라 요즘 엄마 머릿속도 나름 분주하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타이거 맘이라고 (비)웃고 친정 지는 너무 극성맞다고 하신다.


암튼 하루는 과학 선생님께(연세가 꽤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심) 꼬미가 그 어렵다는 유치원 선발을 해냈다고 자랑했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꼬미네는 왜 영어유치원안 보내냐고 물어보셨다. 글쎄요 선생님, 저는 학교 가기 전 까지는 너른 공간에서 뛰어놀고 본인과 친구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을 좀 더 쏟는다는 유치원이 좋아 보였어요,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논술, 수학은 기본이고 코딩까지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아서 그전부터 영어는 미리미리 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부모가 영어를 잘하는 것과 아이가 영어를 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이니 잘 생각해보라는 조언도 해주시고. 강남에서는 요즘 일반 유치원이 점점 사라지고 영어 유치원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던 것 같다.


지난 7월까지 홍콩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이사 고민과 아이들 한글 교육이나 고민했지 영어는 생각도 못했다. 상황이 급변하여 출국할 일이 사라졌다. 가 아이 영어 교육에 자만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코딩이라니, 내가 요즘 교육을 너무 모르나 싶기도 했다. 이맘때쯤 늘 전국의 맘 카페를 뜨겁게 하는 영어유치원 v. 일반유치원의 논쟁과 영어유치원 중에서도 놀이식, 학습식, 절충식 중 어디가 최선인가 하는 수많은 고민들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도 났다. 나는 솔직히 다섯 살이 되면 수영이랑 발레를 시켜주고 싶었는데. (이놈의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마음 한편에 고이 접었지만.)


이렇게 앞으로 이십 년쯤 계속될 (사)교육 혼돈의 세계에 -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을 운운하는 - 드디어 나도 발 담그는 것인가. 정보는 넘쳐나고 엄마의 불안은 곳곳에서 자극한다. 내 인생이라면 선택이 조금 더 단순하겠지만 나의 선택에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수많은 엄마들의 마음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겠지. 그 누구보다도 아이를 사랑하니까.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고, 어떤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알 수 없다. 엄마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 중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의 세계에서 나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일단 또미 해열제부터 먹이자.     




- 덧붙이기 -

오늘의 글은 참 산만하고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다 털어놓지 못했던 꼬미와 또미의 탄생비화(?)를 적어 내려가며 위로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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