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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 POSTINO Jun 06. 2020

찢어짐, 해체로서의 상처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솔직히 어렵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에둘러 가야만 낯선 시간 속으로 다다를 수 있기에,

가야만 한다.



소설에서 상처는 '살 위에 돋아난 신생의 기미'이다. 우리가 상처를 입고 상처를 부인한다고 상처가 사라지지 않기에, 이것을 온전히 되살아내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상처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상처’란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은 소설의 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그 한 줄의 칼 길 너머로 언뜻 제 의식의 밖인 다른 하늘이 보인다면? 그때, 의식의 다른 하늘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되기도 전에 우선 아픔으로 올 것이다. 육신이 다쳐 제 피가 흘러나오고 제 뼈가 드러나면 아픔이 오듯이. 제 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에 추상일 수밖에 없었던 피와 뼈가 살을 열고 솟구쳐 현실이 됨으로써 감각의 고통이 오듯이. (p.325)

여기서 말한 상처가 단순히 모든 고통이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처란, 그보다는 기존 자신의 존재나 세계가 ‘찢어지는’, 해체되는 거대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를테면 ‘우리’로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F1을 비롯한 연극부–즉 우리–에 대한 믿음이 찢어진 순간, 할아버지-아버지로 나타나는 권위와 법이 찢어진 순간, 지식청년으로서의 ‘나’가 실천적-비판적 지식의 공간으로서 택한 연극이 찢어지는 순간, 우체통을 보며 그것에 적힌 언어들이 찢어지는 순간, 순간, 순간들. 이처럼 무수한 찢어짐, 해체의 순간들은 분명 ‘나’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자신과 세계를 지탱하고 인식할 수 있을 만한 여지가 ‘해체된’ ‘나’에게 통합된 자아와 세계 인식은 불가능했다. 자아는 분열된다. 현재는 오로지 현재로서의 시간이 아니며 다른 시간들과 겹쳐진다. 상처는 찢어짐, 해체로서의 상처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찢는 고통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낯선’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상언어-낯설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신문지를 색칠하고, 찢은 다음 그 바탕에 하늘 사진을 두어 만든 소설의 초판 표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언어의 더미를 찢고 나가 새 삶의, 해방의 지평을 보는 가능성을 암시했던 것이다.


작가 이인성은 말과 글의 분리를 시도하였다. 작가는 언어의 문학적 기능을 극도로 끌어올리고자 한 것이다. 문학 언어를 통해 일상 언어로 드러나는 세계를 찢고, 그 너머의 실재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 그래서 작가는 에둘러 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악명높은 난해함은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다음은 작가 이인성의 말이다.

문학은 눌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 달변은 믿을 수 없으므로, 그것은 '저들'의 체계이자 함정이므로,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지, 마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말하듯이 그토록 어렵게. (이인성, 『식물성의 저항』, p.13-14)




위 내용은 연세대학교 20-1학기에 개설된 정명교(정과리), 최영석 교수님의 문학이란무엇인가 강의에서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K-MOOC에서 청강 신청을 하여 들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 쓴 맥락도 없고 불친절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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