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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 POSTINO May 01. 2020

현존재 개념의 해체,
그리고 관계의 총체로서의 현존

[장자 특집] 장자, 「齊物論[제물론]」


저는 이번 학기에 동양으로서양읽기 수업을 수강중입니다.

첫 수업부터 지금까지 장자 사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껏 익숙하게 체화해 온 서양 철학의 패러다임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 철학이 가진 한계에 대한 비판적, 대안적인 사유로서 동양 사상이 가지는 호소력을 조금이나마 함께 공유해보고자 장자 사상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齊物論」에 대한 짧은 글을 업로드합니다.




장자의 「齊物論」은 같음과 다름의 문제를 다룬다. 편견과 시비가 없이 모든 물상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만물제동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齊物論」의 시작과 끝은 喪我[상아]와 物化[물화]로 대응한다. 「齊物論」은 ‘나’를 잃어버린 남곽자기의 이야기로 시작해 나비꿈을 꾼 장주의 이야기로 끝난다. 상아는 ‘나’의 존재를 잊는 것이다. ‘나’의 인식과 분별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천지만물을 나와 일체로 보아 구분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물화는 만물이 변화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齊物論」의 마지막에서 장주는 나비로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이내 꿈에서 깬다. 장주는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 둘은 다름이 아닌 까닭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비는 나비이고 장주는 장주다. 만물제동의 관점으로 그 둘이 차이가 없다 한들, 다른 두 존재를 어찌 같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나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현존재’ 개념에 대한 해체가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미 ‘현존재’라는 개념을 활용한 이상, 서로 다른 두 현존재는 더 이상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현존재'는 이미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개체가 ‘있음’을 가정하는 개념이다. 개체는 본질적으로 독립적이다. 이 독립성이 다른 개체와의 단절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개체와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개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다른 개체에게 받은 영향을 개체의 차원에서 수용, 혹은 흡수하거나 거부하는 등의 반응을 통해 그 현존을 유지해나간다. 현존재의 개체성은 의심받지 않는다. 이렇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장자의 관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장자에서 ‘현존재’ 개념은 허상이다. 현존재 속에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자는 是[시]와 彼[피]의 알레고리를 통해 모든 것은 관계성 속에서만 성립함을 역설한다. 이것是의 관점에서 볼 때 저것彼 아닌 것이 없고,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성립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저것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 아닌 것이 없고, 저것의 관점으로 인해 이것이 성립한다. 이처럼 장자에게 현존재란 그것이 가진 관계성의 총체와 다름 아니다. 다시 나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齊物論」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한 구분이 있으니 이것을 물의 변화라고 한다.


이 ‘분명한 구분’이란 세속적 관점에 의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자는 물의 변화라는 化 개념으로 대답한다. 앞서 관계성의 총체로서 현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관계는 결코 정적이지 않다. 장자 사상에서 명사로서 현존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동사형으로 존재한다. 化는 모든 사물의 동사론적 양태를 설명한다. 모든 개개 사물은 관계성의 총체이자 전체의 관계성 속에서 현존한다. 그 속에서 만물은 변화하는 하나이며, 다른 사물과 동화된 일체임을 이해할 수 있다.


아상에서 벗어나 나의 현존재를 해체하고 모든 현존이 실로 허상임을 깨달음으로써 세계를 해체한다. 그런 나는 모든 현존이 무한히 변화하는 동태적인 관계의 총체로서의 현존임을 깨닫고, 개개 물상이 실로 ‘같은 다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道로 조화하며 끝없는 변화에 나 자신을 그대로 내맡기게 되는 것이 가히 「齊物論」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존재 개념의 해체, 즉 관계성의 총체로서의 현존에 대한 이해는 제물론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부족한 글인 만큼 날카로운 비판 및 지적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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