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다

생의 감각, 그리고 사랑과 상실의 '삶'

김보라, 「벌새」

by IL POSTINO

김보라 감독의 말처럼, 어려서 우리는 온몸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리는 그 생생했던 감각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막히는 것은 비단 혈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감각의 통로도 그렇게 정동적으로 흐르다가, 시간이 흘러서 침전하여 그렇게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의 은희의 시선을 빌린다.




은희의 시선


은희는 ‘바라본다’. 가부장제를 비롯한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불합리한 사회상을,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재난들을,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영화는, 은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무언가 폭로하거나 호소하지 않는다. 은희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치열하게 응시한다.⠀



은희의 시선을 가진 은희 – 사랑에 대해


은희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자신을 죽도록 패기까지 하는 오빠나, 바람을 핀 남자친구, 사이가 틀어진 친구나, 후배, 그리고 영지 선생님께도.

하지만 동정, 연민으로서의 사랑을 바라지는 않는다.

은희는 영화 속에서 주변인의 자리를 맴돌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삶도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은희는 사랑받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바라본다.

또한 사랑받고자 하는 그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 그래서 은희는 영지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선생님도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시는 거예요?

영지는 대답한다.

바보 같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래.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라는 너무 당연해 보여 외려 우리에게 와 닿지 않던 이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말은 막연히 사랑에 대한 인간의 지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애착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지워지는 숙명과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



은희의 시선을 가진 은희 – 그리고 상실에 대해


하지만 죽음을 등지고 사는 인간에게 상실은 사랑만큼이나 보편적인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바라는 만큼 상실 속에서 절망하며, 그런 스스로를 추스르고 끌어안으며 살아간다.

은희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으며, 상실과 관련된 두 번의 경험은 성수대교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첫 번째, 성수대교를 건너는 언니의 통학버스가 무사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상실의 경험은 은희의 삶을 스쳐간다.


두 번째, 영지 선생님이 성수대교 붕괴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상실의 경험은 은희의 삶을 가로지른다.


전자의 경험에서는 사회적인 재난으로 받아들여졌던 경험이, 후자의 경험을 통해 개인적 재난으로도 거듭난다. 영화 속에서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들의 경계는 은희의 몸을 매개하며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은희의 몸에는 사회의 상흔이 아로새겨진다. 은희는 온몸으로 묵묵히, 응시한다.


생의 감각


영지는 은희에게 말한다.

힘들고 우울할 때는 손가락을 펴 보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고.

이는 생의 감각을 느끼는 행위다. 즉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행위다.


은희의 선생님은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는 우리가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삶을 고양하기 위한 말이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의 본 의도와 상관없이, 너무나도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죽어가지만, 분명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의사 폴 칼라니티는 죽음을 앞두고 쓴 자신의 저서 『숨결이 바람될 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삶을 임함에 있어 부딪히고 분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 생명력, 혹은 그 생명 자체에 반하는 것들은 불미스럽다.

폭력과 억압을 가하는 사회와 같은 것들처럼.


벌새는 1초에 60번이나 날갯짓을 하며, 자기 무게만큼의 꿀을 먹는다.

벌새가 이렇게도 부단히 사는 이유, 살기 위해서이다.

벌새는 살기 위해서 산다. ‘지금’ 살아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 살아 있어야 이내 ‘지금’이 될 찰나 후에도 살아 있을 수 있다.

이런 벌새의 모습은 은회와,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생의 감각을 유지하는 일은, 삶과 생명에 대한 갈망은 그렇게 보편적이고 또한 찬란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상실하며 삶을 살아내곤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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