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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연습

2016년 5월 18일

by 기기

묘사 연습

1. 야자실

정적만이 감돈다. 가끔 들려오는 종이 넘기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기침 소리와 계속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의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없다. 그저, 정적뿐이다. 아이들은 의장에 앉아 칸막이 책상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를 풀다 지친 나머지 잠이 든 아이, 잠에서 깨려고 머리를 흔드는 아이, 심심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 멍 때리고 있는 아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 중인 아이까지. 아이들은 서로 다른 행동을 하며 앉아있다.

내 양 옆에 앉은 아이들은 둘 다 공부 중이다. 왼쪽은 체육복 차림이고, 오른쪽은 교복 차림이다. 체육복 상의는 정말 딱 잘 익은 당근의 색을 뽐내고 있다. 보기 흉하다... 그나마 하의는 평범한 남색이다. 그리고 안경테의 색깔 역시 주황색이다. 묘하게 매치된다. 다행히 오른쪽 아이는 하얀 교복 상의를 입고 있다. 그리고 더워서인지 단추를 풀어놓았다. 물론 안에는 흰 티셔츠를 입고 있다. 안경테는 진한 검은색. 생김새와 왠지 어울리는 색이다.

2. 매점 앞

쉬는 시간. 당연하다는 듯 매점으로 달려갔다.(굶주림 때문이었다. 요즘은 매점에서 뭘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8시였는데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하늘의 색이 오묘했다. 마치, 남색 물감에 하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진한 하늘색이었다. 그리고 그 하늘을, 허여멀건한 구름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구름 역시 그 모습이 오묘했다. 뭉게구름이 아니라, 옷에서 풀린 실의 느낌이랄까, 뭔가 하늘하늘해 보였다. 매점 앞에는 잔디 운동장이, 그 뒤에는 불암산이 있다. 팔을 벌리고 서 있으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시원한 바람에 산내음이 실려왔다. 아니, 풀내음인가. 그렇게 서서 산내음을 맡고 있자니, 친구 놈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서둘러 '그냥 바람이 시원해서.'라고 변명하듯 내뱉었다.

아, 그리고, 절대 묘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늘에 떠 있었다. 바로 하늘 한편을 차지하고 밝게 빛을 내던 달이다. 구름도 근처에 없어 홀로 빛을 내던 그 달.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볼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까지 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야자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글을 썼네요. 그런데 쓰고 보니 묘사가 아니라 결국 또 제 감정이 들어갔네요...

이미지 출처는 두산 백과입니다. 저희 학교 자습실에서는 핸드폰 꺼냈다가 걸리면 바로 압수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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