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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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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 May 22. 2016

고장난 카메라

서울 풍물 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서울 풍물 시장을 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 보는 골동품들의 향연에 크게 감동했다. 고등학생인 주제에 매우 옛스러운 것들,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것들을 좋아하는 탓이다. 그렇게 행복한 상태로 시장을 둘러보았다. 숲과 바다를 그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부터 옛 유물같이 생긴 오래된 그릇, 만들어진지 적어도 10년 이상은 된 듯한 카메라, 타자기, 노트북 들. 정말로 골동품이라 할 만한 것들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 카메라를 보았다. 분명히 직사각형이지만 무언가 부드러우면서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게 아날로그의 참 맛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가격이 1만원이라는 말에, 그리고 작동할 거라는 말에 덜컥 사고야 말았다. 집에 가는 길에 덮개를 열어 확인해 본 결과, 떨어진 부품을 테이프로 고정시켜 놓은 것을  보았다. 고장난 카메라였다.

 순간적으로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만 두었다. 그 할아버지께선 정말 작동하는 줄로만 아셨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후회는 없다. 버튼을 누르면 전등이 위로 올라가며 플래시를 쓸 수 있는, 필름을 껴서 사진을 찍은 뒤 다시 현상해야 하는, 그런 카메라가 생겼다는 것에 기뻐할 뿐이다. 사진관을 찾아가 물어봤을 따 만약 수리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좋다. 이런 오래된 카메라.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장난 카메라. 나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해주는 카메라가 있다는 게 좋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정말 수리가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다. 괜찮은 건 맞지만 수리가 되면 좋겠다. 나의 순간을, 글 뿐만 아니라 카메라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기 위해 두 가지 다른 방법을 쓰고 싶다. 핸드폰이 있으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겠지만, 내 핸드폰은 거의 언제나 압수당한 상태다. 내가 길을 걷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트 덕에 글로는 남길 수 있지만.

 그래서 고장난 카메라라도 생긴 게 좋다. 나만의 카메라. 고쳐질지 안 고쳐질지도 모르는 카메라. 아마 무슨 일이 없는 이상 내 방구석 한켠을 계속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 폰을 이용해 찍은 사진들. 몇장 안된다. 배터리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만큼은 찍고 싶었다. 소설로도 읽어봤기에 포스터가 정말 적절하고 좋게 느껴졌다. 소설을 읽었을 때의 유쾌한 감정이 떠올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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