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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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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 May 23. 2016

소년

짧게 쓴 소설

  한 소년이 어두운 길 위를 헤매고 있다. 너무 어두워서 길인지 길이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는 길 위를. 소년이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아무리 오래 달려도 이 어둠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둠은 소년을 점점 더 잠식해가고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자신의 발소리와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소년은 더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달리면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희망하면서. 얼마나 오래 달렸을까. 소년의 눈에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빛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더 밝아졌고 더 커졌다.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자, 소년은 가로등과 그 밑에 있는 문을 보았다. 칙칙하다 못해 음울해 보이는 짙은 회색 문이었다. 그 직사각형의 문은 어두운 벽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문 양옆과 위로는 끝없는 벽의 실루엣만이 보였다.


  문 앞에 선 소년은 자신의 오른손을 쇠로 된 둥그런 손잡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소년은 손잡이를 움켜쥔 채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둠과 고독에 대한 두려움과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이 두 가지 감정이 소년의 내면에서 격렬히 뒤엉켰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무엇이 소년을 기다릴지 그것이 두려웠다. 문을 열고 나갔는데 또다시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면? 문을 열었더니 다른 문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면? 문 너머에 소년이 가장 두려워하고 견디지 못하는 외로움이 그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면? 소년은 그저 문 손잡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소년은 섣불리 문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문 너머에 빛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면? 소년이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문을 열고 나갔더니 그의 일상이, 그가 살던 세계가 다시 그를 반겨준다면? 소년은 이 어둠에서, 고독에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소년은 문을 열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 손잡이가 돌아갔다.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은,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소년은 눈을 찌푸렸다. 좀 전의 가로등 빛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은 한여름의 태양 빛이 소년을 내리쬐고 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길가에 세워진 가로수의 나뭇가지는 소년에게 손을 흔들듯 흔들리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심히 소년에게 몇 초간의 눈길만을 보낸 뒤 지나갔다. 우뚝 선 건물들도 소년을 반기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까지 소년에겐 환영의 트럼펫 소리로 들렸다. 이제 소년은 어둠에서 벗어났다. 다시 자신이 있던 세상으로, 그의 가족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자습실에서 불현듯 떠오른 이야기였습니다. 아주 짧은 습작 수준의 소설이라서 쓰는 데나 퇴고하는 데나 시간이 조금밖에 안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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