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어느 성취 중독자의 속마음
그런 날이 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집에 오는 걸음걸음이 유난히 질척이는 날. 아무도 내게 싫은 소리 하진 않았는데 딱히 좋은 소릴 들은 것 같지도 않은 날. 지하철 문에 떠밀리듯 기대 세상 잘 나가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스마트폰 속을 구경하다 보면 참 나만큼 '별일 없이 사는' 사람도 없는 듯한, 지금 내가 탄 이 삐걱대는 지하철만 빼고 세상 전부가 무지개 동산으로 달려가고 있나 싶은, 그런 날. 도무지 맘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내 모습을 창 너머 멀거니 마주 보는 일이 낯설지 않은 건, 그런 날도 이젠 일상인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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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뭐했냐.
가끔 일에서도, 삶에서도 지금 이 순간 딱히 뚜렷한 (페이스북 대문을 바꿔 달 만한)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질 때면 조금 전과 똑같을 게 분명한 스스로가 한순간에 엉덩이에 구멍 난 풍선처럼 쭈글해 보인다. 하루하루는 오지게 바쁜데 막상 한 달, 일 년이 말도 없이 훅 가버리면 그동안 나는 뭐했지 싶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왜 괜히 카톡 프사들은 눌러봐 가지고.
아니 그리고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이 정도는 해(놨어)야 한다’는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좀 전에 눌러본 프사 속 삶들을 보면 똑같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언제 그렇게 다들 부업에 사업에 결혼에 육아에 각종 모임에... 다들 하루가 48시간쯤 되는 건가?! 나름대로 스스로를 지지리 볶아 시간 사이에 시간을 끼워 넣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몇 년째 리모델링 중인 건물마냥 하염없이 '도전 중' 팻말을 걸어 둔 인생 상태를 자각할 때면 마음은 긴급회의에 들어간다. 언제까지 도전 '중'이기만 할 거야? 어쨌든 계속 도전 중이라는 건, 아직 어느 것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말 아니야? 일 그만 벌리고 뭐 하나라도 좀 끝내 보란 말야. 언제까지 '열심히 사는 애'로만 살 수 있을 것 같애? 안 그래도 바빴던 마음이 더 바빠진다. 서른을 지나며 사회가 정해 놓은 '몇 살엔 이것' 기준을 애써 모른 체 하며 달려왔더니, 이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성취 기준이 애매지다. 회사 밖 어디서도 속 시원히 성적표가 나오질 않으니 지금 내가 뭘 하려고 이렇게 하루하루 정신이 없는가 확실하지가 않다. 바쁨 더하기 바쁨의 답은, 당장엔 '더 이룸'이 아니라 그냥 더 바쁨이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개인적인 성취를 방해하는 가장 큰 주적(?)인 회사에서는, 내 영혼이 체다 치즈 갈듯 아득 바득 갈려 나가는 그곳에서는, 당신 참 잘했소! 라는 성적표를 받기 위해 치러야 할 값이 참으로 비싸다. 시력 감퇴, 의욕 감퇴, 수면 부족, 개인 시간 반납, 인간관계 축소. 어쩌다 'O대리가 이런 건 잘하지' 한마디 들은 날엔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그러지' 싶어 얼른 퇴근 짐을 싼다. 누군가의 한숨들로 얼룩진 지하철 창문에 대고 묻는다. '이놈의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아 진짜 나중엔 뭐 해 먹고살지? 그러니 진작 뭐라도 좀 꾸준히 배워 뒀음 좋았잖아. 연초에 등록한 기타 레슨 몇 번이나 갔어? 그놈의 영어학원에 갖다 바친 돈만 합쳐도 차 한 대는 샀겠다. 비싼 요가복은 사 두고 한 번이나 입었니?' 세상에서 나를 제일 심하게 갈구는 건, 아무래도 부장님이 아니라 나 같다.
그런데 계속 생각해 보면 또 억울한 것이, 나는, 우리는 참 되게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도 적당히 (하지만 최소한 내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은 열심히) 하느라, 물도 충분히 마셔 주느라, 저녁엔 뭘 해 먹어야 하나 머릿속으로 냉장고 속 식재료를 짜 맞춰 보느라, 슬슬 부모님 댁에 전화할 타이밍을 보느라, 미루고 미룬 치과와 정형외과 예약을 또 한 번 미루느라, 아무것도 안 하고 드러누워 쉬고 싶지만 막상 마음이 헛헛해질 것을 대비해 주말 계획도 하나쯤 만들어 두느라, 퇴근길 받은 유학원 리플렛을 챙겨 보느라, 올해는 어디로 여행을 갔다 와야 남은 1년을 또 버틸 수 있을지 미리미리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하느라. 화장실 갈 때마다 틈틈이 내 소셜미디어 타임라인도 들여다보면서, 오늘의 회식에서 붙어 온 소주 한 잔 어치 뱃살을 떨어내느라 자기 전 스쿼트도 짬짬이 해 가면서, 내일 아침 회의 자료와 쓰다 만 이력서가 뒤엉킨 스마트폰 속을 헤집다 그대로 잠이 들 때까지.
다른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는 잘했다, 부럽다며 너무 쉽게 엄지를 치켜세워 주면서, 단 1초의 틈도 없이 하루를 메우는 이런 스스로의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우린 종종 대수롭지 않게 내려 깎는다. 그게 뭐. 오늘 회의 하나 잘 끝낸 게 뭐. 그래 봤자 회사가 돈 벌지 내가 버냐. 영어학원 레벨업 하나 한 게 뭐. 다 오래 다녀서 그런 거지. 그래서 회사가 주재원이라도 보내 준대? 이직 준비, 막연히 하고는 있지. 근데 그게 뭐. 어차피 당장 옮길 자신도 없잖아. 좀 전에 헬스장 6개월치 결제한 거? 그게 뭐. 또 몇 번 가다 말지 않을까.
미래를 위해 이것도 저것도 해봐야지 하며 시작했는데, 시작의 열정적 순간이 지나고 나면 원하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과정 안에선 도무지 어디다 파이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막' 시작했으면서 '결국' 성공하지 못할까 봐 뿌듯함을 아낀다. 남들이 나의 노력에 보내는 세모진 시선과는 별개로,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도 참 어지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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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좋아했었다.
티비에 나오는 에스이에스 언니들처럼 예뻤으면 좋겠고 우리 반 수정이처럼 인기가 많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렇지 않은 내가 싫진 않았다. 나는 밥도 잘 먹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피아노도 잘 치는 걸. 오늘 짝꿍이랑 아파트 상가에 가서 이렇게 우정 목걸이도 맞췄는걸. 내가 오늘의 나를 좋아할 이유는 대단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를 그냥 좋아할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떴다 떴다 비행기를 두드려 보고는,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고 두 손을 구리구리까지 해 가며 자랑스레 말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어쨌든 피아노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피아노 학원에 가고 있고, 매일 선생님이 그려 준 꽃봉오리를 다섯 개씩 색칠해 가며 연습하고 있으니까. 이제 막 피아노 앞에 앉았으면서 '이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원하는 만큼' 잘 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건 여덟 살의 일이 아니었다. 대신 앞으로 계속 더 잘 치게 될 것이 분명한 수많은 시간들에 가슴은 콩콩거렸다.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의 내겐 없는 것, 그건 나의 미래가 얼마든지 나를 기다려 줄 거라는 여유였다. 나는 나의 가능성을 좋아했었다.
더 이상 여덟 살이 아닌 나는 나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 무언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기 전까지의 상태는 매 순간이 불편하다. 영원히 내 앞에서 나를 기다려 줄 것만 같았던 시간은, 어느새 내 뒤로 돌아와 바싹 나를 다그치고 있다. '아직 요만큼밖에 안 갔어? 뭐야, 약속이 틀리잖아.' 내게 주어진 미래가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은 내 마음속에서 너무나 커져버렸다. 그래도 애써 용기를 긁어모아 무언갈 시도했는데, 상황이 변해 버리거나 사실은 다른 선택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아직 맘속에 정해둔 목표치에 가깝지도 않은 오늘의 내가 밉다.
그래서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된 운동이나 취미를 놓는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나 자신을 매일 마주하는 게 너무 싫어서. 버퍼를 둔다. 나는 노력하고 있지 않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아.
그랬더니만 이제는 노력하지 않는 내가 싫다. 사실 이 정도로 괜찮지가 않아서. 남들이 포기하지 않는 게 보여서. 노력 중이면 그래서 불안하고, 노력하지 않고 있자니 그래서 불안하다. 아 대체 어쩌자는 거야? 나의 한숨으로 더 새카매진 지하철 창문이 덜컹덜컹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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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라는 조언만큼 나 같은 성취 중독자에게 어려운 말이 없다. 결국 또 무언가를 성취하러 유학까지 와 있으면서도 변함없이 스스로를 채근하는 나를 보면, 내겐 영원히 현재의 나란 없는 걸까 싶어 스스로가 짠하기도 하다. 물론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계속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한 발 한 발 갈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 한 발 한 발. 어차피 평생 시간을 앞질러 가지 못할 거라면, 늘 성취가 고픈 내 심장을 바꿔 달지 않을 거라면, 일단은 내가 지금의 내 한 발을 좀 더 괜찮다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어쨌든 가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나, 게으른 나의 모습까지 억지로,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최소한 오늘도 끝까지 살아낸 나를 약간만 더 뿌듯해할 줄 알면 좋겠다. 결론 없이도, 성적표 없이도, 시작과 과정만으로 나를 그저 좋아할 수 있었던 그때처럼.
뭐든지 잘 하는 것 같았고, 언제나 사랑받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나는, 지쳐가는 나를, 외로웠던 나를,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하며 애썼던 나를 그저 '아직' 이라며 모질게 내버려둔 건 아니었을까. 사랑해, 그 한 마디를 해주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흔한 말 / 한 번도 해주지 못해서 / 혼자 서운한 마음에 / 지쳐서 숨어버렸니
- 김연우 노래, '사랑한다는 흔한 말' 중에서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9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popco.net/zboard/view.php?id=dica_forum_samsung&no=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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