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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n 17. 2018

아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24/  전방에 오지랖 주의 구간입니다



나는 삼땡이다.

삼땡은, 서른 살이 아니라 삼이 두 개인 나이를 뜻한다는 것을, 삼땡이 되고 알았다. 어쨌든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서 나는 드디어 이십 대 후반부터 슬슬 들어오던 '그 질문'의 본격적인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쩌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 물었다면, 어느새 회사 식당에서 마주친 아래층 팀장님이 물었고, 3이 두 개가 되자 그것은 마치 밥은 먹었냐는 느낌으로 지나가는 아무나 인사하듯 던지는 것이 되었다.


"아직 좋은 소식 없어?"


여기다 잽싸게 아, 좋은 소식이요! 저 유학 갑니다! 하하하하 라고 (상대가 기대하는 '그 답'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애써 둥글게 굴러왔던 질문이 이번엔 발톱을 세워 제대로 날아온다. "아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유학 전 회사에 휴직원을 제출하러 갔을 때, 서류를 받아 든 인사팀 직원이 내게 제일 먼저 한 말이 '아니, 결혼은 언제 하시게?'였다. 유학 소식을 전해 들은 회사 사람들에게서 "가면 남자를 많이 만나라"는 조언을 이미 꽤나 들은 후였다. 지난봄 잠시 한국에 갔을 때, 엄마와 함께 동네 세탁소에 갔을 때도 그 일은 일어났다. 영국은 드라이클리닝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둥 우리의 대화를 듣던 세탁소 아저씨가 문득 엄마를 (내가 아니라, 엄마를) 쳐다보며 속상하겠다는 듯 말했다. "공부는 하러 가고, 다른 건 안 가고?"


이쯤 되면 왜 그들과 흩날리는 미세먼지만큼의 관련도 없는 남이 결혼을 하는지 마는지에 그렇게 신경들이 쓰일까 궁금할 지경이다. 아니 내가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해를 하겠다. 법과 도덕은 만인이 상관해야 할 문제니까. 뭣보다 유학을 가면 평생 결혼은 안 하는 건가? (나는 비혼을 선언한 적이 없다) 삼땡을 목전에 둔 내게 유학이라는 건 마치 결혼에 대한 환불 불가 기회비용이라도 되는 양, 이 유학을 위해 고생스레 보낸 지난 시간들과 앞으로의 목표들이 무색해질 만큼, 정말 상상 밖으로 많은 이들이 유학이라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30대 결혼 대기자'로서의 내 1년간의 공백을 걱정했다. 아, 그 시간 동안 한국에 있으면, 나는 그럼 최선을 다해 결혼을 하게 되는 건가?


결혼은 될 수 있는 대로 늦게 해라, 언니 궁서체다.

결혼?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 해. 그러니까 할 거면 빨리 해.

애 낳을 거 생각하면 지금쯤 결혼할 남자를 만나고 있어야지. 지금도 빠른 거 아냐.

금요일 밤에 혼자 집에 있다고? 당장 뭐라도 바르고 어디라도 나가!

능력 있으면 혼자 살어, 요즘은 여자가 결혼으로 잃는 게 더 많아.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사니, 몇 살 더 먹으면 이제 너 좋다는 남자도 없다?


해라, 마라, 빨리 해라, 늦게 해라, 사실 결혼은 서른을 전후로 내가 인생에서 무슨 선택을 하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한 마디 할 수 있는 '꺼리'였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은 괜찮지만 조만간 훅 갈' 나이였다가, '여자로서 고3과 같은' 나이였다가, 이젠 '그 까다로운 눈을 좀 낮춰야 할' 나이라는 나는 여전히 저 질문에 대해 '그러게요 하하하' 이상의 깔끔한 대답은 찾지 못했다. 아니, 그 이상의 대응책을 일일이 마련하기엔 그것이 너무 아무데서나, 온 사방에서,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는 탓이다. 처음 보는 세탁소 아저씨에게서, 커피 한 잔 나눈 적 없는 회사 사람으로부터.



*

여기선 왼쪽, 저기선 오른쪽, 여기선 속도를 좀 높여야 (혹은 줄여야) 한다며 주변에서 묻지도 않은 ‘내 인생 최적 경로’를 안내해 주는 일은 사실 굳이 결혼이라는 경유지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깝게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부터 다음 주에 떠날 여행, 나아가 회사 생활에 대한 태도나 시월드를 대하는 자세(!)까지 본인이 해봐서, 내가 너 걱정돼서 하는 조언 거리는 넘치고 깔렸다.


음, 근데 조언이란 원래 좋은 게 아닌가? 내가 해 보고, 먹어 보고,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준다는 데 그게 왜 나빠? 그것이 왜 나쁘냐면, 어떤 경우엔 그것이 일반적인 조언을 넘어 지적과 강요의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누군가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하면 아 너는 그러냐, 하면 되는데 굳이 그것을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기준에 맞추어 서걱서걱 재단을 하는 거다. 때론 그 '이해 안 감'의 감정을 못 이겨 스트레스까지 받아 가면서. 너는 왜 그런 책을 좋아하니. 그것은 고급진 취향은 아니구나. 윽 그걸 그렇게 먹는다구? 정말 먹을 줄 모르네. 왜 그 멋진 곳까지 가서 그런 시시한 여행을 하려고 하는 거지? 그 도시에선 이것과 저것을 꼭 해봐야 하는 건데. 왜 굳이 여길 그만두고 저런 회사에 갈까. 경험상 그런 커리어는 별론데. 내가 다 겪어 봐서 안단 말야.


인터넷의 맛집이란 맛집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한번 가본 집'이라는 우스개가 있듯이, 본인의 '인생 하나'에서 경험해본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 수많은 모습으로 다른 인생에게 던지는 조언은 관심과 추천이라기보단 참견과 오지랖이 되기 쉽다. 특히 듣는 이의 상황은 어떠한가, 나와 그의 사이는 어느 정도인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내가 먼저 겪어봤다'는 사실을 권리처럼 행사하는 가벼운 개입은 나쁘다. 최소한 "듣는 사람 입장에선" 나쁘다.


'먼저'와 '나중'이 직급과 연차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회사라는 집단에서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그 어느 집단에서보다 이런 오지랖이 심각하다.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니 덜할 것 같은데, 오히려 순서만 다르지 각자가 겪게 되는 경험의 종류가 비슷하기 때문에 자기의 과거 경험에 빗대 상대의 처지를 쉽게 판단하고 개입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해봤는데 아니던데?, 그 생각은 틀렸어, 나라면 그렇게 안 한다,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등등.

가려는 목적지에 대한 길안내라기보단 운전법에 대한 훈수에 가까운 이런저런 간섭들에 치이다 보면, 차라리 내 청첩장 찍히는 날짜에 대한 관심은 고마운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겪어 본 인생의 '그 부분'에 대해, 나도 내가 좀 살아 보고 내 판단이 어떨지 보면 안될까요.



*

살면서 무언가를 겪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지혜다. 본인이 힘들게, 때론 오랜 시간이 걸려 얻은 지혜를 남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다짜고짜 앞 뒤 없는 전도를 당해봤거나, 내민 팜플렛을 받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넌 지옥에 갈 것'이라는 악담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좋다고, 혹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이에게 들이미는 것'이 상대방에겐 어떤 느낌일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최소한 내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서로 궁금해하고, 이래저래 참견도 해 가며 사는 게 좋다면, 걱정 없이 부려도 되는 오지랖이 있다. 바로 '긍정'의 오지랖이다. '내가 해봤으니 다 알아!' 보다는 '나도 해봐서 너를 이해해'라는 공감을, '남들 다 하는 이건 언제 하려고?' 대신에 '네가 지금 하려는 일이 궁금해!'라는 관심을, '이건 옳고, 저건 틀려' 하는 답 대신 '한번 해 봐!' 하는 용기를 건네주는 거다. 세상에 그 누가 나를 응원하는 참견을 싫어할까?


나그네 길, 꽃길, 고생길, 흔히 길에 비유하는 인생길엔 정해진 교통법규가 없다. 70억 가지의 길 위에서 누구는 빨리, 누구는 천천히, 누구는 이 길로, 누구는 저 길로 간다. 때론 가던 목적지를 바꾸기도 하고, 없던 길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어떨 땐 꽤 오래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다. 길가의 안내판이 성큼성큼 도로에 뛰어들어 내 옆에 탑승하지 않더라도 어딘지 든든함을 주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왜 이 길과 저 길로 가지 않냐며 참견하는 내비게이션이 될 수는 없어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안내판은 되어 줄 수 있다. 서로의 길에 든든한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그러니, 제 길 위에서 좋은 소식 그만 탐색하셔도 됩니다. 30대 젊은이의 길에 결혼 말고도 좋을 수 있는 소식은 얼마든지 많답니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9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kennorton.com/essays/ants-and-aliens-thirty-year-pl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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