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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Dec 27. 2018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라는 걸로 있어?

25/  천직이란 있는 걸까



어둑어둑한 시각 학교 안 카페 모퉁이에 혼자 앉아 A4용지 하나를 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반 강제적 자아 성찰의 시간. '나는 누구인가'를 능가하는 오늘의 심층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내일부터 상반기 공채 시즌이 시작이었다. 어디라도 써야 했지만, 그 어디가 최소한 어디부터 어디여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문송한 내겐 '그 전공이 아니라서 쓸 수 없는 회사'는 있었어도 '전공이 이거니까 쓸 수 있는 회사'의 범위 같은 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방금까지 수많은 회사의 고객님이었던 입장에서 갑자기 그들 중 '우리 회사'가 될 곳을 찾아야 했고, 몸담고 싶은 분야와 일하고 싶은 직군도 정해야 했다. 게다가 내가 왜 원래부터 그 모든 것들에 최적화된 사람인지 어필하기 위해 쓸 말도, 운이 좋다면 면접에서 할 말도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오늘의 문제는, 정확히는 내가 '회사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겪어 본 적 없는 '회사 직무'라는 세계에서, 나는 대체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때론 하고 싶어서, 대부분은 언젠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쌓았던 경험들은, 회사 안에서 발현될 수 있는 역량으로 기깔나게 번역되지 않는 한 참 구체적으로 쓸데없었다. 마음이 미세먼지 꽉 찬 하늘처럼 뿌얘졌다. 어디에서라도 단서를 찾기 위해 나는 뭘 할 때 그나마 행복했던 사람인가를 뒤적여 보았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던 순간에 행복했었는지, 나는 이런 일을 잘하는구나 느꼈는지를 생각나는 대로 써 보고, 그에 맞는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해 볼 참이었다. 물론, 회사원이라는 범위 안에서.


교실 뒤에 혼자 남아 나머지 숙제를 하는 초등학생처럼, 나는 오늘 뭐라도 쓰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는 운명의 취준생이었다. 과거의 내 경험과 뭔지 모를 미래의 내 직업을 꿰매어 보기 위해 까맣게 애쓴 흔적들이 쌓여갔다. 10년 전 그 밤, 멘탈을 낟알로 털어내는 눈물겨운 자아 성찰은, 마침내 종이 한 장을 겨우 채운 뒤 이렇게 끝났다.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라는 걸로 있어?"



*

'하고 싶은 일', '적성에 맞는 일', '가슴 뛰는 일'.

언제부턴가 이런 말들은 늘 비슷한 느낌을 준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미루고 미뤄 쌓인 숙제를 보는 듯한 복잡한 기분. 이미 찾았어야 했거나,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어떤 압박감.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인생은 짧으니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그침과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느냐'는 타이름 사이에서 밀리고 당겨지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하고 싶은 일]과의 밀당이란 어떻게든 내가 쫄리는 게임이라, 그것을 모를 때는 모르니까 쫄리고 알게 된다 하면 그걸 어떤 직업으로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막막해서 쫄린다. 이미 무엇이 되어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해도, 지금 그 일이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었더냐는 것은 퇴근길이면 치러지는 시험 문제다. '난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이 일을 한다'는 한숨, '넌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좋겠다'는 부러움, 더 이상 '희망이 아닌 장래'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 등이 엉킨 어른의 [하고 싶은 일]은 그렇게 일하는 누구나의 가슴 밑바닥을 뱅글뱅글 긁는다.


나의 첫 번째 직업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다시 세상의 모든 직업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고르시오'라는 문제 하나에 달린 세상의 선택지는 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난 그중 이제 겨우 하나를, 그것도 가까스로 선택했다 지웠을 뿐인 거였다. 하고 싶은 일도, 직업으로 삼을 일도, 내가 선택한다고 꼭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선택을 하긴 해야만 한다는 참으로 환장할 현실. 스스로를 곰곰이 뜯어보다 보면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저런 것도 해볼까 싶긴 한데 그 이렇고 저런 것들이 머릿속에 뚜렷한 어떤 직업으로 쑥 떠오르지는 않았다. 밤마다 이불을 물어뜯으며 고민한 내 관심사와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은 지구 몇 바퀴를 돌아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하곤 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직업으로 뭐냐고.



*

나는 종종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김연아로, 마이클 잭슨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걸음마를 떼자마자 엄마가 스케이트화를 신겨서,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 인류 전체가 손해인 어떤 천재성을 타고나서, 진로라는 걸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면. 그렇게 날 때부터 누가 '넌 이 길을 가라!' 하고 딱 정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천직.

그래, 나는 천직이 있고 싶었다. 내가 일을 택한 게 아니라 마치 일이 나를 택한 듯한, 다른 길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또렷한 외길. 특히 한번 내 것이 아닌 듯한 길을 돌아온 뒤로는, 정말이지 이다음에 택할 길이야말로 나의 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생을 고민 없이 쭉 걸어갈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는 간절한 환상을 품었다. 얼마나 그 '외길 인생'이 욕심났는가 하면, 이직을 준비하며 썼던 입사 원서에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의 영화 한 편 제대로 본 적 없는 임권택 감독의 이름을 적기도 했다. 초등학교만 나와 평생을 영화밖에 몰랐다는 그의 '한 길'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나도 정말 천직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 진짜 내 안에 뭐가 있긴 있는데, 뭔지 모를 이게 직업으로 뭔지 알고 싶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기나 긴 고민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카피라이터가 되었을 때, 내가 "나 이제 카피라이터야!" 하며 흐억 울음을 터트렸던 건 원하던 카피라이터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이젠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날줄 씨줄을 엮어서 찾아낸 이 '나만의 하고 싶은 일'을 이제 할 수 있게 됐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진로 고민하느라 날 새지 않아도 되겠다. 어쩌면 천직이 될 수도 있는 일을 찾은 거겠지? 됐어 이젠. 으으어억.


그러나 대 반전은, 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이 길 위에서 나는 또다시, 어쩌면 처음부터 쭈욱, 이리저리 갈지자걸음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로 변경을 하던 순간의 '이젠 평생 고민할 일 없겠다'던 생각은, 마치 힘들게 고생해서 살을 뺀 후 '이젠 죽을 때까지 다시 살찔 일 없겠다'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었다. 방심하면 훅 넘어가는 체중계의 바늘처럼, 고민할 틈 없는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훅 불어나 있는 고민거리들이 나에게 놀랄 만큼 변함없는 것들을 물었다.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그 일이 맞는지, 이것이 내가 걷고 싶었던 그 확신 터지는 외길이 맞는지.

그것은 다만 지금의 현실이 내가 과거에 품었던 환상에 못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 환상 속을 걷고 있는 와중에도 나와, 나의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어딘가는 깎이고 어딘가는 쑥 자라기도 하면서, 어제의 갈증을 채워주었던 우물이 오늘은 말라 있는 것을 깨닫기도 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나'라는 건 한번 답을 구하면 끝이 나는 시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세월을 경험하고 성장함에 따라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을 '직장인 유기체'로 살아왔고 보니, 오늘 밤에도 나는 새하얀 종이에 뻑뻑한 펜을 굴려 내가 원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과 세상의 일들을 짝짓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무엇이 되어 있어야 평온한 얼굴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고 있소! 할 수 있는 건지. 애초에 그 일을 어느 정도 경험해보지 않고 확신을 가진다는 게 가능한 건가? 내가 김연아나,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면.



*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위는 유튜버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잘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만화가, 아이돌, MC 등의 이름을 가진 직업을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제까지 없던 플랫폼이 만들어졌고, 누군가 그를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지점이 있었고, 같은 관심사와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이제 유튜버라는 몇 년 전까지는 있지도 않았던 직업을 희망하고 있다.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거의 3백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가 말했다. 친척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유튜버라고 소개했더니 그들이 "That's not a thing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이라 했다고. 어쩌면, 직업이라는 두 글자에 우리의 눈은 많이 가려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That's not a thing'이라 말하면서 스스로를 '내가 아는 직업'의 틀 안으로 한계 짓고 있을지 모른다.


만화 '서플리' 중


진로 고민에 끝이란 것이 있을까? 영업사원에서 카피라이터로, 유학생으로, 그리고 다시 있는 힘을 다해 회사원으로. 나름 마음의 소리를 좇아 인생에 큰 변화를 주며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대밭을 헤매는 무사마냥 두리번거리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고민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평생 정체성 찾기 싸움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한 싸움.


그래도 나는 이 징허디 징헌 고민을 계속해 볼 예정이다. 다만 이제는 '평생 하고 싶은 일' 하나가 아닌 '계속 가고 싶은 길'의 모습을 천천히 진득이 고민해 보고 싶다. 내일의 내가 여전히 직업이라는 틀에, 천직이라는 꿈에 매여 한 발짝 내딛지도 못하고 길 위에 멈춰 서버리지 않도록.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가 하게 될 일들이 어디로 이어질지 미리 다 알고 싶어서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너무 많은 부담을 싣지 않도록.

그렇게 또 다른 10년이 흘러,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면 좋겠다. 내가 지금 이 고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9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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